그 사랑에 붙들린 삶 (고린도후서 5:11-15)

오늘의 말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우리말성경)
11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두려운 분이심을 알므로 사람들에게 권면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 드러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양심에도 우리가 그렇게 드러나 있기를 바랍니다.
12 그렇다고 우리가 또다시 여러분에게 우리를 추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는 여러분에게 우리 때문에 자랑할 기회를 주려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으로가 아니라 외모로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대답할 말을 가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해도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우리가 확신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었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은 것은 산 사람들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대신해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해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배경 설명

오늘 본문도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바로 앞 10절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말을 이어 받습니다. 언젠가 그리스도 앞에 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바울은 그 질문에 자기 삶으로 대답합니다.

11절의 “주께서 두려운 분이심을 알므로”는 원어로 보면 “주님을 경외함을 알므로”에 가깝습니다. 구약 성경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부른 바로 그 경외입니다. 겁에 질려 떠는 마음이라기보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 앞에서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이 경외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한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바울에게는 취미나 경력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서 내어놓을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곧바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 드러나 있습니다”라고 덧붙입니다. 10절에서 심판대 앞에 “드러나야” 한다고 할 때 쓴 바로 그 동사입니다. 언젠가 드러날 사람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앞에 드러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숨길 것이 없으니 사람들 앞에서도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12절을 이해하려면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뒤, 다른 교사들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다른 교회에서 받은 추천서를 들고 왔고, 말솜씨와 풍채와 영적 체험을 내세웠습니다. 바울은 11장에서 그들을 조금 비꼬듯 “저 위대한 사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바울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직접 대해 보면 약하고 말도 시원치 않다는 평이 돌았습니다(10:10). 그러자 바울의 사역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3장 1절에서 이미 “우리가 또 우리 자신을 추천하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오늘 12절에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자기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반대자들에게 대답할 말을 쥐여 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대자들은 “외모로” 자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원어로는 “얼굴로”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사람들 눈에 띄는 것으로 자기를 증명하려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 반대편에 “마음”을 놓습니다. 하나님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는, 사무엘상 16장의 오래된 고백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13절은 조금 낯설게 들립니다. “우리가 미쳤어도”라니요. 여기서 “미쳤다”로 번역된 말은 엑시스테미입니다. 본래 “자기 밖으로 나가 서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황홀경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두 가지 읽기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바울이 겪은 깊은 영적 체험을 가리킨다는 읽기입니다. 바울은 12장에서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경험을 조심스럽게 꺼냅니다. 그런 체험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의 일이지, 사람들 앞에서 자랑할 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반대자들이 바울을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는 읽기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26장에서 총독 베스도는 바울에게 “네가 미쳤구나”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느 쪽이든 바울의 결론은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미친 것 같은 순간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차분하게 가르치는 순간은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바울의 삶에는 자기를 위한 칸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 바울은 그 모든 삶의 이유를 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개역개정 성경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로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구절입니다. “강권하다”로 번역된 쉬네코는 사방에서 조여 붙잡다, 꼼짝 못 하게 에워싸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에서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어 댈 때(8:45), 베드로의 장모가 심한 열병에 사로잡혔을 때(4:38) 같은 말이 쓰였습니다. 빌립보서 1장에서 바울이 살 것인지 떠날 것인지 “둘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할 때도 이 말을 썼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렇게 붙들려 있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길로 새어 나갈 틈이 없을 만큼 그 사랑이 자기를 에워싸고 있다는 것입니다.

“확신하건대”라는 말도 가볍지 않습니다. 원어는 “판단하다, 결론을 내리다”라는 뜻입니다.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오래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느낌입니다. 한때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그는 모든 것을 다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얻었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주를 두려워함: 원어 포보스 투 퀴리우.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무서워 도망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에 그 앞에서 진지해지는 마음입니다.
  • 권면하다: 원어 페이토. 설득하다, 마음을 돌이키게 하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말과 삶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 드러나다: 원어 파네로오. 10절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야”와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그날을 기다리기 전에 이미 하나님 앞에 투명하게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 추천하다: 원어 쉬니스테미. 소개하다, 보증해 주다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다른 도시로 가는 사람이 추천서를 들고 가는 일이 흔했습니다. 고린도의 반대자들은 이런 추천서를 내세웠습니다.
  • 기회: 원어 아포르메. 본래 군대가 작전을 시작하는 거점, 발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반대자들 앞에서 설 수 있는 발판을 주고 싶어 합니다.
  • 외모: 원어 프로소폰. 얼굴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사람들 눈에 드러나는 조건을 가리킵니다.
  • 미치다: 원어 엑시스테미. 자기 밖으로 나가 서다는 뜻으로, 황홀경이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가리킵니다.
  • 정신이 온전하다: 원어 소프로네오. 맑은 정신으로 절제하며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 강권하다: 원어 쉬네코. 사방에서 조여 붙잡다, 에워싸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떠밀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꼼짝없이 붙들린 상태를 말합니다.
  • 대신하다: 원어 휘페르. “~을 위하여, ~을 대신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일어났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 살아나다: 원어 에게이로. 일으키다, 깨우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죽기만 하신 분이 아니라 다시 일으킴을 받으신 분입니다.

주목해볼 표현

  1.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 드러나 있습니다” (11절)
    • 바로 앞 10절의 심판대 이야기와 같은 동사를 씁니다. 언젠가 드러날 것을 아는 사람은 오늘부터 드러난 사람처럼 삽니다.
    • 하나님 앞에서 투명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 자기를 꾸미느라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2. “마음으로가 아니라 외모로 자랑하는 사람들” (12절)
    • 얼굴과 마음의 대비입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 바울의 반대자들이 내세운 것은 추천서, 말솜씨, 체험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들을 다투어 이기려 하지 않고 기준 자체를 바꿉니다.
  3. “우리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해도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13절)
    • 뜨거운 순간은 하나님께, 차분한 순간은 이웃에게 드려집니다. 어느 쪽이든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은 없습니다.
    • 신앙은 감정의 온도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방향으로 증명됩니다.
  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14절)
    • 바울을 움직이는 힘은 의무감이나 두려움만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11절의 경외와 14절의 사랑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습니다.
    • 여기서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기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붙드는 쪽은 그분입니다.
  5.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었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14절)
    • 그리스도의 죽음은 먼 곳에서 일어난 남의 일이 아닙니다. 그 죽음 안에서 옛사람인 나도 함께 죽었습니다.
    •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합니다. 같은 진리를 여기서는 한 줄로 말합니다.
  6.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15절)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목적이 여기 적혀 있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시려는 것입니다.
    • “더 이상”이라는 말은 과거와 현재를 가릅니다. 자기를 위해 살던 날이 있었고, 이제 그 날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1. 주님 앞에 설 것을 아는 사람은 오늘을 다르게 산다 (11절). 바울은 심판대 이야기를 두려움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그 경외가 그를 사람들에게로 보냅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 앞에 드러난 사람으로, 숨김없이 살아갑니다.
  2. 하나님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 (12절). 고린도 교회에는 겉모습과 추천서로 자기를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사역의 진짜 가치는 사람 눈에 띄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마음에 있다고 말합니다.
  3. 우리의 삶은 자기 자신을 위한 칸이 없다 (13절). 뜨거울 때도 차분할 때도 바울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있었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그의 삶의 방향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삶의 방향을 바꾼다 (14-15절).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그 죽음 안에서 우리의 옛 삶도 끝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해 삽니다. 그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의지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 본문을 천천히 읽으면 먼저 두 개의 단어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11절의 두려움과 14절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둘을 떼어 놓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은 딱딱하고 무섭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사랑만 말하는 신앙은 따뜻하지만 가볍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바울 안에서는 이 둘이 다투지 않습니다. 주님이 두려운 분이심을 알기에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그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알기에 삶을 두려움으로만 채우지 않습니다. 경외가 없는 사랑은 쉽게 흐려지고, 사랑이 없는 경외는 쉽게 굳어집니다. 바울은 둘을 함께 붙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오래 머무는 자리는 12절입니다. 마음으로가 아니라 외모로 자랑하는 사람들.

이 말은 이천 년 전 고린도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우리도 얼굴로 자랑하는 세상에 삽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직함을 가졌는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사진 속 삶이 얼마나 그럴듯한지. 우리는 매일 추천서를 쓰고 매일 추천서를 읽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남을 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잽니다.

바울은 그 싸움에서 지는 쪽이었습니다. 반대자들과 나란히 세우면 그는 초라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보다 더 멋진 추천서를 내밀어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준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 이 말은 초라한 사람에게 주는 위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럴듯한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도, 그 안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하나님 앞에 드러나 있습니다.

세 번째는 13절입니다.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해도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이 짧은 절을 곱씹다 보면 바울의 삶이 얼마나 단순했는지 보입니다. 우리는 삶을 여러 칸으로 나누어 삽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칸, 가족과 이웃에게 주는 칸,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는 나만의 칸. 바울의 이 문장에는 그 마지막 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이웃에게 주고, 이웃에게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것은 바울이 쉬지도 않고 자기를 돌보지도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삶 전체가 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절은 남들의 평가에서 자유로운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누군가는 바울을 미쳤다고 했고, 누군가는 약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 평가를 부정하느라 힘을 쓰지 않습니다. 미쳤다고 해도 좋고, 멀쩡하다고 해도 좋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위해 사는지가 분명한 사람은, 사람들이 붙이는 이름표에 덜 흔들립니다.

네 번째는 14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이 구절은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그 힘을 놓치기 쉽습니다. 강권한다는 말이 본래 사방에서 조여 붙잡는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이 문장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바울은 자기가 사랑을 붙잡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자기를 붙잡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으려고 무언가를 꽉 붙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먼저 붙드신 사랑 안에 있기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내가 붙잡는 신앙은 내 손아귀 힘이 빠지면 함께 빠집니다. 지치는 날이 있고, 의심이 드는 날이 있고, 도무지 기도가 나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 우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결심이 아닙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놓지 않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길에서 그 사랑에 붙잡혔습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던 사람을 그리스도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 뒤로 바울은 평생 그 사랑 밖으로 걸어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자유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15절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목적이 여기 분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유를 바꾸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거운 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나를 위해 살지 말라니,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물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거꾸로 읽으면 다르게 보입니다.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은 결국 끝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는 삶입니다. 추천서를 더 모으고, 얼굴을 더 다듬고, 사람들의 평가에 매달리는 삶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이미 나를 가장 깊이 아시고 가장 크게 사랑하셨다면, 나는 더 이상 나를 증명하려고 살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더 이상 나를 증명하느라 지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묻는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나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사람들의 시선인가, 두려움인가, 아니면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의 사랑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매일 완벽하게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답이 흔들리는 날에도 그 사랑은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내 삶에 적용하기

  1. 내가 들고 다니는 추천서 적어 보기. 사람들 앞에서 나를 증명하려고 자주 꺼내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 적어 보십시오. 학력일 수도, 직함일 수도,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나는 여전히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 옆에 적어 보십시오.
  2. 오늘 한 가지 일을 “누구를 위해” 하는지 물어보기. 오늘 하는 일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이웃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 조용히 물어보십시오. 같은 일이라도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3. 남의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보려고 애쓰기. 오늘 만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겉모습이나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으로 대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연습입니다.
  4. 그 사랑에 붙들린 순간 떠올리기. 내 힘으로 버틸 수 없었는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붙들어 준 때가 있었다면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도 그 사랑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고 고백하십시오. 바로 앞 본문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걷습니다 (고린도후서 5:6-10)에서 본 심판대 앞의 그리스도가 바로 이 사랑의 그리스도이십니다.
  5. “더 이상”이라는 말 앞에 하나 내려놓기. 더 이상 나를 위해 붙들고 있지 않아도 되는 것 하나를 골라 보십시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일 수도, 이기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작은 기도를 드려 보십시오.

생각해보기

  1. 나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마음은 어떻게 함께 있는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있지는 않은가?
  2. 요즘 나는 무엇으로 나 자신을 평가하고 있는가? 그 기준은 얼굴에 가까운가, 마음에 가까운가?
  3. 내 삶에서 하나님께도 이웃에게도 내주지 않는 “나만의 칸”은 무엇인가?
  4. 내가 신앙을 붙잡고 있다고 느낄 때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붙잡고 있다고 느낄 때는 어떻게 다른가?
  5.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말은 나에게 짐으로 들리는가, 자유로 들리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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