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소망이 끊어진 자리에서 (고린도후서 1:8-11)

오늘의 말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 (우리말성경)
8 형제들이여,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에 대해 여러분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난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질 지경이 됐습니다.
9 우리는 마음에 사형선고를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건지시는 하나님]
10 그분은 우리를 과거에도 그렇게 큰 죽음에서 건지셨고 또 미래에도 건지실 분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이후에도 건져 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11 여러분도 우리를 위해 기도로 협력해 주십시오. 이는 많은 사람의 기도로 우리가 받은 은사로 인해 우리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배경 설명

어제 본문에서 바울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찬양의 근거를 밝히는 자리입니다. 그가 왜 위로를 그렇게까지 말하는지, 바로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제야 털어놓습니다.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라고 했습니다. 아시아는 로마의 속주 이름이고, 그 중심 도시가 에베소입니다. 바울이 3년 가까이 머물며 사역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의 데메드리오 소동—은장색들이 아데미 신전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도시 전체를 뒤집어 놓은 사건—을 가리킨다고 보는 이들이 있고, 고린도전서 15장 32절의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는 말과 연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중병이었다고 보는 견해, 투옥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무엇이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바울이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분명하게 적어 두었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심했고, 살 소망까지 끊어졌으며, 마음에 사형선고를 내려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사람은 이미 그 일에서 건져진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지나고 나서 쓴 글인데도 미화가 없습니다. “돌아보니 별것 아니었다”가 아니라 “죽는 줄 알았다”고 그대로 씁니다. 그러면서 결론은 하나님께로 갑니다. 편지 전체의 배경과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힘에 지나도록: 원어는 “지나치게, 우리의 힘을 넘어서”라는 두 표현을 겹쳐 쓴 것입니다. 앞의 단어(휘페르볼레)에서 영어 hyperbole(과장법)이 나왔습니다. 바울은 자기 한계를 조금 넘은 것이 아니라, 한계 자체가 무의미해진 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 사형선고: 헬라어 아포크리마는 신약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옵니다. 원래는 공적인 판결·답변을 뜻하는 법률 용어입니다. 감정적인 절망이 아니라, “이건 끝났다”는 판정을 스스로 내렸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 유대인이 날마다 드리던 기도문에 들어 있던 하나님 호칭입니다. 바울은 새로운 표현을 지어낸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외우던 그 문장을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붙든 것입니다.
  • 건지시다: 원어 뤼오마이는 위험 속에서 끌어낸다는 뜻입니다. 10절 한 절에 이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건지셨고, 건지실 것이고, 이후에도 건져 주실 것입니다.
  • 소망합니다: 원어는 현재완료형입니다. 지금 막 생긴 마음이 아니라 이미 두었고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소망은 감정이 아니라 자세에 가깝습니다.
  • 협력해 주십시오: 이 단어(쉬뉘푸르게오)도 신약에 한 번뿐입니다. ‘함께’와 ‘아래에서 일하다’가 붙은 말로, 옆에서 거들어 주는 정도가 아니라 같은 짐을 밑에서 함께 떠받친다는 그림입니다.

주목해볼 표현

  1. “여러분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8절)
    • 바울은 자기가 무너졌던 이야기를 굳이 알려 주려 합니다. 사도의 권위가 공격받고 있던 편지에서 말입니다.
    • 강한 척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위로는 이긴 사람이 아니라 같은 자리를 지나 본 사람에게서 건너옵니다.
  2. “그렇게 된 것은 ……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9절)
    • 고난의 이유를 사건 안에서 찾지 않고, 그 결과 안에서 찾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었나”가 아니라 “이 일이 나를 어디로 데려갔나”입니다.
    • 이것은 고난이 좋은 것이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를 의지할 수 없게 된 것이 손해만은 아니었다는 고백입니다.
  3. “건지셨고 …… 건지실 …… 이후에도 건져 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10절)
    • 한 절 안에 ‘건지다’가 세 번 나옵니다. 이미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그 이후에도 건져 주실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무엇으로 아는지가 이 반복에 들어 있습니다. 건지시는 것은 하나님이 한 번 하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속한 일입니다.
    • 앞의 두 번은 하나님에 대한 진술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에서 문장이 바뀝니다. “우리가 그분께 소망을 두었다”는 말 안으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 때문에, 그 앎이 곧 지금 우리의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 그러니 이 절은 이렇게 읽힙니다. 과거에 건지셨고 앞으로도 건지실 분이라면,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이 또 건져 주시리라 소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소망합니다’는 현재완료형이라, 한때 품었다 마는 감정이 아니라 이미 두었고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4. “여러분도 우리를 위해 기도로 협력해 주십시오” (11절)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말한 사람이, 바로 다음 문장에서 사람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과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서로 반대말이 아닙니다. 기도해 달라는 부탁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에 함께 서 달라는 초청입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1. 바울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8절) — 사역이 잘 풀리던 시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한계 이하의 무게만 지는 것은 아닙니다.
  2. 고난은 의지의 방향을 바꾸었다 (9절) — 바울처럼 유능하고 확신에 찬 사람에게서 “나 자신을 의지함”을 걷어내는 데는 이 정도의 무게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3. 건지심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10절) — 이미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입니다. 구원은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계속되는 성품입니다. 그 사이에 놓인 오늘을 버티게 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4. 기도는 함께 지는 일이다 (11절) — 그리고 그 결과는 개인의 안도로 끝나지 않고 많은 사람의 감사로 흘러갑니다. 한 사람이 건져지면 여러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오늘 저는 ‘고난’이라는 단어 앞에 한참 서 있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에서 건지실 분이니 그 건지심을 소망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통과하고 있는 고난은 무엇인가, 그것부터 물어야 했습니다.

제게는 생각하고 계획하며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었던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공부와 일을 어떻게 이어갈지, 어느 자리에서 다시 사역하게 될지. 기도했고,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닫힌 문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주눅이 들었습니다. 걱정과 조급함과 불안, 그리고 “어떻게 다시 해야 하나,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이 제 안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을 지경에까지 두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상황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사람과 인맥을 의지하고 있었나. 아직 젊다는 것과 내 능력을 의지하고 있었나. 아니면 내가 세운 계획을 의지하고 있었나.

답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계획이 무너졌을 때 소망까지 끊어진 것 같았다면, 제가 붙들고 있던 것은 그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있었다면 계획이 틀어져도 그렇게까지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나를 건지시고 이끄실 것을 믿고 있었을 테니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마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사람도, 너의 계획도 의지하지 말고 나만 의지해라. 내가 너를 건질 것이고 너를 사용할 것이다. 너를 사용하기 위해 훈련시키고 그곳으로 보낼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도, 걱정하지도 마라. 그 일을 맡길 때 감당할 능력도 줄 것이고 훈련도 시켜 줄 것이다. 내가 너를 건질 것이다.

아멘. 주님께서 그렇게 일하실 것을 기대하며 주님을 의지합니다.

그러면 이제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내 계획이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닫힌 문이었을 뿐이고, 여전히 주님의 손이 나를 이끌고 계시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니 닫힌 문 앞에서 좌절할 것도 없고, 닫힌 문을 만나는 일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눈앞의 문이 열린 문인지 닫힌 문인지는 직접 두드려 보기 전까지 알 수 없습니다.

닫힌 문임을 확인했다면, 그것은 앞으로 확인해야 할 문이 하나 줄어든 것입니다. 수많은 문 앞에서 고민만 하고 있으면 그 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끝내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두드려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내 삶에 적용하기

  1.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한 줄로 적어 보기 — 계획이 틀어졌을 때 얼마나 흔들렸는지가 답을 알려 줍니다. 무너진 것은 계획인데 소망까지 함께 무너졌다면, 붙들고 있던 것은 그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7)에서 보았듯, 자리의 근거는 내 계획이 아니라 부르심입니다.
  2. 건져 주신 기억을 하나 적어 두기 — 바울은 과거의 구원을 근거로 미래를 소망했습니다. 오늘 힘든 일이 있다면, 그 옆에 예전에 지나온 일 하나를 나란히 적어 보십시오. 그때도 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았는데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그 기록이 다음 고비에서 근거가 됩니다.
  3. 기도를 부탁할 사람 한 명 정하기 — 11절의 바울처럼, 지금 지고 있는 짐 하나를 이름 붙여 누군가에게 맡겨 보십시오. 혼자 버티는 것이 더 믿음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함께 밑에서 떠받쳐 달라는 초청이고, 나중에 그 사람도 함께 감사하게 됩니다.

생각해보기

  1. 계획이 틀어졌을 때 나는 얼마나 흔들리는가? 그 흔들림이 내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는지 말해 주지는 않는가?
  2. 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았던 때가 있었는가? 그때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을 지금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3. 아직 두드려 보지 않고 문 앞에서 고민만 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 오늘 두드려 볼 문 하나를 고른다면 어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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