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아진 것은 내 마음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6:11-13)
오늘의 말씀
[마음을 넓히십시오] (우리말성경)
11 고린도 사람들이여, 우리의 입이 여러분을 향해 열려 있으며 우리의 마음이 넓게 열려 있습니다.
12 여러분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스스로 좁아진 것입니다.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이 말합니다. 여러분도 보답하는 양으로 마음을 넓히십시오.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은 세 절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세 절에서 고린도후서 전체의 숨결이 바뀝니다. 바로 앞 6장 3-10절에서 바울은 숨 쉴 틈도 없이 긴 문장을 이어 갔습니다. 매 맞음과 감옥과 배고픔, 영광과 모욕,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일곱 겹의 역설까지, 자기가 어떤 일꾼으로 살아왔는지를 쏟아 놓았습니다. 그 긴 문장이 끝나자 바울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춥니다. 그리고 이름을 부릅니다. “고린도 사람들이여.”
바울이 편지 한가운데서 수신자를 이렇게 직접 부르는 일은 드뭅니다. 신약 전체에서 비슷한 장면은 갈라디아서 3장 1절의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와 빌립보서 4장 15절의 “빌립보 사람들이여” 정도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안타까움에 찬 꾸짖음이었고, 빌립보서에서는 고마움이 담긴 부름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이 부름은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서운함과 그리움이 함께 묻어 있는 목소리입니다.
이 부름을 이해하려면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쌓인 시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 교회를 직접 세웠습니다. 일 년 반 동안 그곳에 머물며 천막을 만들어 생활비를 벌고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8:1-11). 그러나 그가 떠난 뒤 교회는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바울은 여러 번 편지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 사이에 마음 아픈 방문이 있었고(2:1), 많은 눈물로 쓴 편지도 있었습니다(2:4). 게다가 화려한 추천서를 들고 들어온 순회 교사들이 바울을 깎아내렸습니다. 바울이 방문 계획을 바꾼 것을 두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고(1:15-17), 사례를 받지 않은 것을 두고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바울에게 마음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바울이 세운 교회였지만, 속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 앞부분에서 그 오해를 하나씩 풀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긴 해명과 변론을 마친 자리에서 신학 논증이 아니라 마음을 내보입니다.
11절의 “우리의 입이 여러분을 향해 열려 있다”는 말은 숨김없이, 거리낌 없이 다 말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자기의 약함과 눈물과 두려움까지 털어놓았습니다. 1장 8절에서는 “살 소망까지 끊어질 지경이 됐다”고 고백했고, 4장에서는 자기를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빗댔습니다. 자기를 포장하지 않고 다 보여 준 것입니다. 입이 열렸다는 것은 마음이 열렸다는 표시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넓게 열려 있습니다”라는 표현은 구약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편 119편 32절, “주께서 내 마음을 넓혀 주실 때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겠습니다.” 헬라어 구약성경(칠십인역)은 이 구절에서 오늘 본문과 같은 동사를 씁니다. 시편 기자에게 넓어진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었고, 그 넓어진 마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달릴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넓어진 것도 그가 원래 너그러운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5장 14절에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12절에서 바울은 “좁아지다”라는 말을 두 번 씁니다. 이 단어는 4장 8절에도 나왔습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환난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에서 “절망하지 않고”로 옮긴 말이 바로 이 단어입니다. 좁은 곳에 갇혀 숨이 막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사방에서 짓눌려도 그렇게 갇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고린도 교인들은 아무도 짓누르지 않는데 스스로 좁은 곳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대비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여러분이 내 마음 안에서 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이 스스로 좁아졌다는 것입니다.
12절의 둘째 “마음”은 11절의 마음과 다른 단어입니다. 11절은 일반적으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고, 12절은 원래 몸 안의 장기, 곧 창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깊은 감정이 배 속 깊은 곳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애간장”이나 “속정”에 가까운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속정이 말라 버렸다고, 깊은 곳에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3절에서 바울은 “자녀에게 말하듯이”라고 덧붙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4-15절에서 그는 “1만 명의 선생이 있더라도 정작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여러분을 낳았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이 말은 권위를 내세우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부모가 서운한 자녀에게 하는 말투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보답하는 양으로”라고 말합니다. 내가 마음을 열었으니 너희도 열어 달라는 것입니다. 거래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은 사랑이 원래 그렇게 오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한쪽만 열린 문으로는 오갈 수 없습니다.
바울의 이 간청은 7장 2절에서 다시 이어집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6장 14절부터 7장 1절까지는 믿지 않는 사람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학자들은 이 단락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여러 의견을 냅니다. 분명한 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고 있다는 점입니다. 복음의 일꾼인 자기에게는 마음을 넓히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들에게는 마음을 닫으라는 것입니다. 열어야 할 곳에 닫혀 있고, 닫아야 할 곳에 열려 있던 것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입이 열려 있다: 원어 토 스토마 헤몬 아네오겐. 직역하면 “우리 입이 열렸다”입니다.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하게 다 말했다는 뜻으로, 거리낌 없는 말과 열린 마음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 마음(11절): 원어 카르디아. 사람의 생각과 뜻과 감정이 모이는 중심을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말입니다.
- 넓게 열려 있다: 원어 플라튀노. 넓히다, 넓게 만들다는 뜻입니다. 칠십인역 시편 119편 32절에서 하나님이 마음을 넓히신다고 할 때 쓰인 말입니다. 좁은 마음과 반대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넉넉한 상태입니다.
- 좁아지다: 원어 스테노코레오. 좁은 곳에 갇히다, 답답해 숨이 막히다는 뜻입니다. 4장 8절의 “절망하지 않고”도 원문으로는 이 말을 부정한 것입니다. 사방에서 눌려도 갇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마음(12절): 원어 스플랑크나. 원래 몸속의 장기, 창자를 뜻합니다. 깊은 정, 애틋한 마음을 가리킬 때 씁니다. 예수님이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고 할 때의 동사가 이 말에서 나왔습니다(마 9:36).
- 자녀: 원어 테크나. 친자식을 부를 때 쓰는 다정한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복음으로 낳은 자녀로 여겼습니다.
- 보답하는 양으로: 원어 안티미스티아. 받은 것에 맞갖게 돌려준다는 뜻입니다. 같은 값으로 갚는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사랑받은 만큼 사랑으로 응답하라는 부드러운 요청입니다.
- 넓히십시오: 11절과 같은 동사 플라튀노의 명령형입니다. 바울의 마음이 넓어진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그렇게 되라는 초대입니다.
주목해볼 표현
- “고린도 사람들이여” (11절)
- 긴 변론을 마친 바울이 처음으로 이름을 부르며 말을 겁니다. 논리가 아니라 관계로 다가가는 순간입니다.
- 오해가 쌓인 사이에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이름을 부르는 일입니다. 바울은 서운한 마음을 안고서도 그들을 여전히 자기 사람으로 불렀습니다.
- “우리의 입이 여러분을 향해 열려 있으며” (11절)
- 바울은 이 편지에서 자기의 약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절망했던 일, 눈물로 쓴 편지,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자기 모습까지 다 보여 주었습니다.
- 마음을 연다는 것은 좋은 모습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약한 모습까지 내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의 마음이 스스로 좁아진 것입니다” (12절)
- 관계가 멀어질 때 우리는 대개 상대가 나를 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그 생각을 정중하게 뒤집습니다. 문을 닫은 것은 상대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말합니다.
- 이 말이 아프게 들리는 이유는 대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좁아진 마음은 스스로 그렇게 된 줄을 잘 알지 못합니다.
-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이 말합니다” (13절)
- 바울은 사도의 권위로 명령하지 않고 부모의 자리에서 부탁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자리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 서운한 자녀에게 다가가는 부모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먼저 마음을 내밉니다.
- “보답하는 양으로 마음을 넓히십시오” (13절)
- 사랑은 한쪽으로만 흐를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미 자기 쪽 문을 활짝 열었고, 이제 고린도 교인들의 차례라고 말합니다.
- 넓히라는 말은 명령형이지만, 강요가 아니라 초대입니다. 닫힌 문은 밖에서 억지로 열 수 없고, 안에서 스스로 열어야 합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 복음의 일꾼은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11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할 말을 다 했습니다. 해명하고 변론했을 뿐 아니라 자기의 약함과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열린 입은 열린 마음의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그 넓어진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 관계의 거리는 대개 우리 쪽에서 생긴다 (12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밀어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스스로 좁아졌습니다. 오해와 소문과 서운함이 쌓이면서 마음 깊은 곳의 정이 말라 갔습니다.
- 사도의 권면은 부모의 부탁이다 (13절 상). 바울은 권위를 앞세우지 않고 “자녀에게 말하듯이” 다가갑니다. 그들을 복음으로 낳은 사람으로서, 꾸짖기보다 돌아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 사랑은 서로 오갈 때 온전해진다 (13절 하). 바울이 바라는 것은 보답하는 마음입니다. 한쪽만 열린 문으로는 사랑이 오갈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기 쪽 문을 열어 둔 채로 기다립니다.
- 열어야 할 곳과 닫아야 할 곳을 분별해야 한다 (6:11-7:2 전체의 흐름). 바로 뒤에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과는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복음의 일꾼에게는 마음을 닫고, 세상의 기준에는 마음을 열어 두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넓히는 것은 아무에게나 열어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랑 앞에 여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 짧은 본문을 읽다 보면 12절에서 오래 머물게 됩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스스로 좁아진 것입니다.
이 말은 듣기 편한 말이 아닙니다. 누구도 자기 마음이 좁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관계가 멀어질 때 우리는 대개 이유를 바깥에서 찾습니다. 저 사람이 먼저 변했다, 저 사람이 나를 서운하게 했다, 저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생각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실제로 맞을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할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방문 계획을 바꾸었고, 아픈 편지를 보냈고, 그들의 잘못을 드러냈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 마음이 닫히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자연스러움 너머를 보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좁아지는 일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작은 서운함 하나가 자리를 잡고, 그 위에 들은 말 하나가 얹히고,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방이 줄어듭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만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는데, 어느새 그 방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좁아집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마음이 좁아진 사람은 자기 마음이 좁아진 줄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는 분별력이 생겼다고, 이제야 사람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고 여깁니다.
바울이 쓴 “좁아지다”라는 말이 4장 8절에도 나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습니다. 바울은 사방으로 압박을 받아도 좁은 곳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바깥의 환경은 그를 짓눌렀지만 그의 마음은 넓게 열려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반대였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가두지 않았는데 그들은 스스로 좁은 곳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넓이가 형편에 달려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넓은 마음이 있고, 평안한 자리에서도 좁아진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마음을 넓히는가. 바울은 자기 마음이 왜 넓어졌는지를 이미 말했습니다. 5장 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서운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의심했고, 그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의 마음이 닫히지 않은 것은 그가 원래 너그러운 성품이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먼저 그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원수 되었던 자기를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서운한 태도는 그 사랑을 거둘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시편 119편의 기도가 여기서 다시 들립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혀 주실 때. 넓은 마음은 내가 애써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너그러워지려 하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억지로 문을 열어 둔 마음은 금세 지쳐서 다시 닫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넓혀 주신 마음은 다릅니다. 그 마음은 사람의 반응에 따라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지 않습니다.
13절의 “자녀에게 말하듯이”라는 말도 오래 붙들게 됩니다. 바울은 이 대목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누가 더 서운했는지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모가 자녀에게 하듯 말합니다. 나는 문을 열어 두었다, 너도 열어 달라. 관계가 깨어진 자리에서 누군가는 먼저 이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먼저 하는 사람은 대개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본문을 거울처럼 들고 서면 두 가지 질문이 함께 떠오릅니다. 하나는, 나는 지금 누구에게 마음이 좁아져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예전에는 넉넉히 자리를 내어 주던 사람인데, 어느새 그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굳어지는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족일 수도 있고, 교회 안의 누군가일 수도 있고, 오래전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 마음의 방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돌아보라고 이 말씀은 조용히 권합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바울의 자리에 서 있을 때의 질문입니다. 나는 마음을 열었는데 상대가 닫혀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우리는 대개 상대가 닫으면 나도 닫습니다. 그것이 공평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상대가 닫았다고 자기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열어 둔 채로, 다시 들어오라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것은 상대가 옳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갑니다. 마음을 넓히라는 부탁은 사람 사이의 문제이기 전에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좁아진 마음은 사람을 향해서도 좁아지고, 하나님 앞에서 넓어진 마음은 사람 앞에서도 넓어집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기도는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주님, 좁아진 것은 내 마음이었습니다. 다시 넓혀 주십시오.
내 삶에 적용하기
- 마음이 좁아진 관계 하나 떠올려 보기. 예전보다 마음의 자리가 줄어든 사람이 있다면 그 이름을 조용히 떠올려 보십시오.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천천히 짚어 보십시오. 상대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내 마음이 어떻게 좁아져 왔는지를 보는 시간입니다.
- 시편 119편 32절로 기도하기. “주께서 내 마음을 넓혀 주실 때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겠습니다.” 오늘 하루 이 구절을 짧은 기도로 삼아 보십시오. 너그러워지려고 애쓰기 전에 넓은 마음을 하나님께 먼저 구하는 연습입니다.
- 먼저 이름 불러 주기. 바울은 서운한 자리에서 “고린도 사람들이여”라고 먼저 불렀습니다. 멀어진 사람에게 짧은 안부 한 줄을 보내 보십시오. 긴 해명이나 사과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약함을 감추지 않고 말해 보기. 바울의 열린 입은 자기의 약함까지 보여 주는 입이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요즘 힘들어하는 것 하나를 솔직하게 나눠 보십시오. 마음을 여는 일은 대개 그런 작은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 열어야 할 곳과 닫아야 할 곳 분별하기. 내 마음이 쉽게 열리는 곳과 쉽게 닫히는 곳을 나란히 적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과 말씀 앞에서는 닫혀 있고, 나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 앞에서는 열려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지난 본문 세상이 보는 나, 하나님이 아시는 나 (고린도후서 6:6-10)에서 본 것처럼,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이 아시는 나를 붙들 때 분별이 선명해집니다.
생각해보기
- 지금 내 마음에서 자리가 가장 좁아진 사람은 누구인가? 그 좁아짐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나는 마음이 좁아진 것을 분별력이 생긴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 상대가 마음을 닫았을 때 나도 따라서 닫는 편인가, 아니면 문을 열어 둔 채로 기다리는 편인가?
- 바울처럼 약함까지 보여 주며 마음을 연 경험이 있는가? 그때 무엇이 두려웠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은 지금 넓어지고 있는가, 좁아지고 있는가? 그것이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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