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걷습니다 (고린도후서 5:6-10)

오늘의 말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우리말성경)
6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담대합니다. 우리가 몸 안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에게서 떠나 따로 거한다는 것을 압니다.
7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8 우리가 담대하게 원하는 것은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9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있든지 몸을 떠나 있든지 주를 기쁘게 하려고 힘씁니다.
10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각기 선악 간에 몸으로 행한 것에 대해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앞에서 한 이야기를 이어 받는다는 표시입니다. 바로 앞 5장 1-5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몸을 장막, 곧 천막에 비유했습니다. 땅 위의 장막집은 언젠가 걷히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하늘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장막 안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탄식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 탄식이 헛되지 않은 이유로 바울은 하나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천막이라는 비유는 바울에게 낯선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은 바울이 고린도에 처음 왔을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머물며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고 기록합니다. 가죽을 자르고 꿰매 천막을 만들던 사람이 자기 몸을 천막에 빗댄 것입니다. 천막은 편리하지만 오래가지 않습니다. 비바람에 닳고, 기둥이 흔들리고, 결국 걷어야 할 날이 옵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4장 후반부의 흐름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겉사람은 낡아 가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7절,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고백을 한 줄로 줄인 것입니다.

6절과 8절에는 원어로 보아야 살아나는 말놀이가 있습니다. “몸 안에 거하다”는 엔데메오, “떠나 거하다”는 엑데메오입니다. 두 말은 모두 데모스, 곧 내가 사는 동네나 고향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엔데메오는 고향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고, 엑데메오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 나가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 두 단어를 뒤집어 씁니다. 몸이라는 동네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주님이라는 고향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몸을 떠나면 비로소 주님 곁이라는 고향에 머물게 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일종의 타향살이로 보는 눈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몸을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영이 중요하니 몸으로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미 그 생각을 강하게 바로잡았습니다.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했고, 몸의 부활을 한 장 전체에 걸쳐 설명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받을 보응은 “몸으로 행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몸은 버리고 떠날 껍데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 낸 삶의 자리입니다.

10절의 “심판대”는 원어로 베마입니다. 높이 쌓아 올린 단, 재판관이나 관리가 올라서서 판결을 내리던 자리를 가리킵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이 단어는 아주 구체적인 장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고린도의 광장 한가운데에는 돌로 쌓은 커다란 베마가 있었고, 그 유적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바울 자신이 바로 그 자리에 끌려가 총독 갈리오 앞에 선 일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그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익숙한 자리를 빌려, 모든 사람이 결국 서게 될 더 큰 자리를 말합니다.

여기서 조심해서 읽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믿는 사람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니 이 심판대는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를 가르는 자리라기보다, 구원받은 사람이 자기 삶을 주님 앞에 내어놓는 자리에 가깝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각 사람이 세운 것을 불이 시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금과 은으로 지었는지,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었는지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같은 그림 위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9절의 “힘씁니다”라는 동사가 중요합니다. 원어 필로티메오마이는 명예를 사랑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당시 그리스 도시에서 사람들은 공공건물을 세우거나 잔치를 열어 이름을 남기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영예를 좇는 마음을 가리키던 말을, 바울은 방향만 바꾸어 씁니다. 사람들의 박수가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같은 단어를 로마서 15장에서도 썼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복음 전하기를 힘썼다고 할 때입니다.

고린도후서 전체의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겉사람은 낡아 가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바로 앞 장의 고백은 겉은 낡아 가도 속은 날마다 새롭게 (고린도후서 4:13-18)에서 다루었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담대하다: 원어 싸레오. 용기를 내다, 마음이 든든하다는 뜻입니다. 두려움이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6절과 8절에 두 번 나옵니다.
  • 몸 안에 거하다 / 떠나 거하다: 원어 엔데메오와 엑데메오. 고향에 머물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 땅의 몸과 주님 곁을 고향과 타향으로 서로 맞바꾸어 말합니다.
  • 믿음으로 행하다: 여기서 “행하다”는 원어 페리파테오, 곧 걷다라는 뜻입니다. 믿음은 한 번의 결심보다 매일 걸어가는 걸음에 가깝습니다.
  • 보는 것: 원어 에이도스. 눈에 보이는 모양, 겉모습을 뜻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고 길을 정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 차라리 원하다: 원어 유도케오. 기꺼이 좋게 여기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삶을 싫어했다는 말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님 곁이 더 좋다는 고백입니다.
  • 힘쓰다: 원어 필로티메오마이. 본래 명예를 사랑하다, 영예를 얻으려 애쓰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목표로 삼고 온 힘을 쏟는다는 말입니다.
  • 기쁘게 하다: 원어 유아레스토스. 마음에 흡족하다, 받아들일 만하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12장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에도 같은 말이 쓰였습니다.
  • 심판대: 원어 베마. 높은 단, 재판석입니다. 고린도의 광장에 실제로 있던 돌 연단이며, 바울이 총독 갈리오 앞에 섰던 자리이기도 합니다.
  • 드러나다: 원어 파네로오. 단순히 출석한다는 뜻이 아니라, 숨김없이 환히 보여진다는 뜻입니다. 겉모습 뒤에 있던 속까지 드러나는 것입니다.
  • 보응을 받다: 원어 코미조. 자기 몫을 받아 가다, 돌려받다는 뜻입니다. 살아 낸 삶이 그대로 돌아온다는 느낌을 담고 있습니다.
  • 악: 여기서 쓰인 말은 흔히 쓰는 악(카코스)이 아니라 파울로스입니다. 쓸모없다, 하찮다, 값어치가 없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끔찍한 죄만이 아니라 헛되이 흘려보낸 것까지 함께 가리킵니다.

주목해볼 표현

  1. “우리는 항상 담대합니다” (6절)
    • 바로 앞에서 바울은 장막 안에서 탄식한다고 말했습니다. 탄식과 담대함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습니다.
    • 담대함은 형편이 좋아서 생기는 마음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보증을 받았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입니다.
  2.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7절)
    • 행한다는 말은 걷는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생각의 문제이기 전에 발걸음의 문제입니다.
    • 보는 것으로 걷지 않는다는 말은 눈을 감고 걷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마지막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3.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8절)
    • 바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빌립보서 1장의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이 훨씬 더 좋습니다”라는 고백과 이어집니다.
    • 그러나 바울은 이 말을 하고 곧바로 9절로 넘어갑니다. 저 너머를 바라보는 눈이 오늘을 대충 살게 만들지 않습니다.
  4. “몸 안에 있든지 몸을 떠나 있든지 주를 기쁘게 하려고 힘씁니다” (9절)
    • 살든지 죽든지 목표는 하나입니다. 삶의 형편은 바뀌어도 방향은 바뀌지 않습니다.
    • 명예를 좇던 말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로 돌려 씁니다. 누구의 인정을 받으려고 사는지를 묻는 표현입니다.
  5.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10절)
    • “우리 모두”에는 바울 자신도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남을 심판하려고 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도 그 앞에 선다고 말합니다.
    • 드러난다는 말은 무섭게 들릴 수 있지만, 그 자리에 앉으신 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분 앞에 서는 것입니다.
  6. “몸으로 행한 것에 대해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10절)
    • 몸으로 산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작은 일도 기억됩니다.
    • 선과 대비되는 말이 “쓸모없는 것”이라는 점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큰 죄만큼이나 헛되이 흘려보낸 시간도 함께 돌아보게 합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1. 탄식하면서도 담대할 수 있다 (6절). 바울은 몸이라는 장막 안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담대하다고 말합니다. 그 담대함의 근거는 자기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2. 우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걷는다 (7절). 지금 이 땅의 삶은 고향을 떠나 있는 삶과 같습니다. 주님을 눈으로 뵙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약속을 따라 한 걸음씩 걷습니다.
  3. 소망은 오늘을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8-9절). 바울은 주님 곁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 때문에 지금을 대충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몸 안에 있든 떠나 있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4. 모든 삶은 그리스도 앞에서 드러난다 (10절). 믿는 사람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구원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자리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 낸 삶 전체를 주님 앞에 내어놓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생각보다 무겁고, 생각보다 귀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 본문 앞에 서면 먼저 두 개의 방향이 동시에 보입니다. 하나는 저 너머를 향합니다.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 다른 하나는 바로 오늘을 향합니다. 몸으로 행한 것.

많은 사람이 이 둘 가운데 하나만 붙잡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 너머만 바라봅니다. 결국 하늘에 갈 테니 지금 여기서의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늘만 봅니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당장의 결과가 전부라고 여깁니다. 바울은 이 둘을 떼어 놓지 않습니다. 영원한 집을 바라보기 때문에 오늘을 더 성실하게 살고, 오늘을 성실하게 살기 때문에 영원을 기다리는 마음이 헛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오래 머무는 자리는 7절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이 한 줄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가볍게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실제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부분 보는 것으로 걷습니다. 통장의 숫자를 보고, 몸의 상태를 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일이 되어 가는 모양을 보고 다음 걸음을 정합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마지막 기준이 되면, 보이는 것이 흔들릴 때 우리도 같이 흔들립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한 자리를 떠올려 보면 무게가 달라집니다. 그는 방금 겉사람이 낡아 가고 있다고, 장막 안에서 탄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이는 것만으로는 담대할 이유가 별로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러므로 항상 담대하다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분이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걷는다는 것은 앞이 환히 보여서 걷는 것이 아니라, 앞이 다 보이지 않아도 그분의 음성을 따라 한 걸음을 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9절입니다. 주를 기쁘게 하려고 힘씁니다.

이 동사가 원래 명예를 사랑하다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 문장은 조용한 질문이 되어 돌아옵니다. 나는 누구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고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 마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지으셨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입니다. 사람의 박수를 향하면 우리는 늘 불안합니다. 박수는 금방 그치고, 기준은 자꾸 바뀌고, 더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습니다.

바울은 그 마음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한 분의 기쁨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자유로워졌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누가 자기를 초라하다고 평가하든, 누가 더 그럴듯한 추천서를 들고 오든, 바울은 거기에 매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평가는 다른 곳에서 올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사는지가 정해지면, 나머지 목소리들은 조금씩 작아집니다.

그리고 “몸 안에 있든지 몸을 떠나 있든지”라는 말도 곱씹어 볼 만합니다. 형편이 어떠하든 목표는 같다는 뜻입니다. 건강할 때나 약할 때나, 일이 잘 풀릴 때나 막힐 때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은 늘 열려 있습니다. 큰일을 할 수 있을 때만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도, 그 자리에서 신실하게 서 있는 것 자체가 그분께 드리는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10절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야 합니다.

심판이라는 말은 마음을 움츠러들게 합니다. 드러난다는 말은 더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는 아무도 모르게 두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절을 천천히 읽으면 두 가지가 함께 눈에 들어옵니다.

첫째는 그 자리에 앉으신 분이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바울은 그냥 심판대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심판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서게 될 자리 앞에 계신 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입니다. 바로 다음 단락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드러남이 두려운 까닭은 우리를 모르는 누군가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미 우리를 가장 깊이 아시고,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분입니다.

둘째는 드러나는 것이 우리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몸으로 행한 선한 것도 함께 드러납니다.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 참아 낸 것,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건넨 작은 친절, 알아주는 사람 없이 지켜 온 약속들이 거기서 빛을 봅니다. 이 땅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분 앞에서는 잊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심판대는 두려운 자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살아 낸 삶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바울이 고른 단어 하나가 마음에 걸립니다. 선과 대비되는 말로 흔한 악이 아니라, 쓸모없다는 뜻의 말을 썼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큰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안심하지 말라고 조용히 일러 줍니다. 주님이 주신 하루를 아무 방향 없이 흘려보내는 것도 그분 앞에서 돌아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를 겁주려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가 그만큼 귀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마지막에 우리를 다시 오늘로 데려옵니다. 영원을 말하던 바울이 결국 몸으로 행한 것을 말하며 끝을 맺습니다. 저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은 오늘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하루가 영원 앞에 놓일 것을 알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성실하게 걷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묻는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나는 무엇을 보며 걷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의 기쁨을 향해 걷고 있는가. 눈에 보이는 것은 오늘도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걷는 길의 끝에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이 계시고, 그분은 우리가 몸으로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을 잊지 않으십니다.

내 삶에 적용하기

  1. 내가 무엇을 보며 걷고 있는지 적어 보기. 요즘 내 결정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 적어 보십시오. 돈일 수도, 건강일 수도, 사람들의 시선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하나를 나란히 적어 보십시오. 어느 쪽이 내 발걸음을 이끌고 있는지 정직하게 살펴보십시오.
  2. 오늘 하루의 목표를 한 문장으로 바꿔 보기. 해야 할 일 목록을 보기 전에, 오늘 이 일들로 누구를 기쁘시게 하려는지 먼저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같은 일을 해도 방향이 바뀌면 마음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3.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 행하기.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작은 선을 오늘 하나 실천해 보십시오. 몸으로 행한 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잊히지 않는다는 말씀을 믿는 연습입니다.
  4. 흘려보내고 있는 시간 하나 돌아보기. 큰 잘못이 아니더라도, 방향 없이 흘려보내고 있는 시간이나 습관이 있다면 하나를 골라 보십시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으로 옮길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5. 탄식과 담대함을 함께 기도하기. 지금 짊어진 무거운 짐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그리고 그 옆에서,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분을 신뢰한다고 고백해 보십시오. 바울은 탄식을 숨기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담대했습니다. 앞선 글 눌려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7-12)에서 본 흙 그릇의 고백도 같은 결을 따라갑니다.

생각해보기

  1. 요즘 나의 발걸음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흔들릴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2. 나는 누구의 인정을 받으려고 가장 애쓰고 있는가? 그 대상이 주님으로 바뀐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3. 형편이 좋을 때와 어려울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4.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무엇인가? 그 자리에 앉으신 분이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라는 사실은 그 감정을 어떻게 바꾸는가?
  5.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주님 앞에서 기억되기를 바라는 나의 작은 행함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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