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영광, 남는 영광 (고린도후서 3:7-11)

오늘의 말씀

[더욱 영광스러운 직분] (우리말성경)
7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돌에 새긴 문자의 직분도 영광스러워 모세 얼굴에 나타난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이 그의 얼굴을 주목할 수 없었다면
8 하물며 영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9 만일 정죄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의의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10 이 경우 한때 영광스럽던 것이 더 큰 영광이 나타남으로 인해 더 이상 영광스럽게 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11 사라져 버릴 것도 영광스러웠다면 영원한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배경 설명

바로 앞 단락(3:1-6)에서 바울은 추천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고린도에 들어온 어떤 사람들은 다른 교회에서 써 준 추천서를 들고 와서 자기 권위를 내세웠습니다. 바울에게는 그런 종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우리의 편지입니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돌판이 아니라 마음 판에 쓴 편지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 한 문장을 덧붙였습니다. 문자는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한 문장을 풀어 쓰는 단락입니다. 돌판이라는 말이 나오자 바울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시내산입니다.

출애굽기 34장에 그 장면이 있습니다. 모세가 두 번째 돌판을 받아 들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마주하고 말씀을 나눈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얼굴을 보고 두려워서 가까이 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에게 말할 때는 얼굴에 수건을 썼고, 하나님 앞에 들어갈 때는 수건을 벗었습니다.

바울은 이 이야기를 가져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돌판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눈을 들지 못할 만큼 분명한 영광이었습니다. 이 점을 바울은 조금도 깎아내리지 않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것을 전하는 일에는 진짜 빛이 따랐습니다. 그는 로마서에서도 율법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영광 옆에 두 개의 이름을 붙입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 그리고 정죄의 직분입니다. 처음 읽으면 거친 표현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율법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무엇이 옳은지 정확히 보여 줍니다. 그래서 그 앞에 서면 사람은 자기가 어디서 어긋났는지 알게 됩니다. 문제는 거기까지라는 데 있습니다. 율법은 잘못을 밝힐 수는 있어도 그 잘못을 고칠 힘을 주지는 못합니다. 판결문은 정확할수록 피고에게는 무거운 법입니다. 돌에 새긴 문자는 틀린 말을 하지 않지만, 사람을 살려 내지는 못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쓰는 논리는 유대 랍비들이 익숙하게 쓰던 방식입니다. 작은 것이 이러하다면, 하물며 큰 것은 얼마나 더하겠는가. 오늘 본문에는 이 논리가 세 번 반복됩니다. 죽음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영의 직분은 얼마나 더하겠는가(7-8절). 정죄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의의 직분은 얼마나 더하겠는가(9절). 사라질 것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영원한 것은 얼마나 더하겠는가(11절). 세 쌍이 나란히 놓이면서 두 언약의 차이가 점점 선명해집니다.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바울이 언약이라는 말보다 직분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는 점입니다. 그가 비교하는 것은 두 개의 제도라기보다 두 종류의 섬김입니다. 모세가 돌판을 들고 내려와 백성 앞에 선 일, 그리고 바울이 복음을 들고 고린도 사람들 앞에 선 일입니다. 그러니 이 단락은 신학 논문이 아니라 한 사역자의 고백에 가깝습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이 어떤 일인지, 그 일의 영광이 어디에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고 교회에 설명하는 글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10절이 끼어 있습니다. 한때 영광스럽던 것이 더 큰 영광 때문에 더 이상 영광스럽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해가 뜬 뒤의 등불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등불이 꺼진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타고 있습니다. 다만 한낮의 햇빛 옆에서는 아무도 그 불빛을 보지 않습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나던 빛이 그랬습니다. 진짜 빛이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비치는 빛 앞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대목을 바울이 굳이 길게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바울은 초라해 보이는 사도였습니다. 말솜씨가 뛰어나지도 않았고, 추천서도 없었고, 매를 맞고 쫓겨 다녔으며, 눈물로 편지를 쓴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바울을 깎아내리던 사람들은 더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그들이 모세와 율법의 권위를 앞세웠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빛만이 영광의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 마음에 새겨지고 있는 일, 영이 사람을 살리는 그 일이 더 큰 영광입니다.

고린도후서 전체의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바울이 자기 자격을 스스로 증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기대는 모습은 그분 안에는 오직 예만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9-22)에서도 보았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직분: 원어 디아코니아. 섬기는 일, 식탁 시중을 드는 일에서 나온 말입니다. 지위나 명예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수고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 짧은 단락에서 이 단어를 네 번 씁니다.
  • 영광: 원어 독사. 구약에서 이 말의 뿌리가 되는 히브리어 카보드는 본래 무게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무게, 사람이 그 앞에서 몸을 낮추게 되는 실재입니다. 오늘 본문에만 이 단어와 그 동사형이 열 번 가까이 나옵니다.
  • 돌에 새긴 문자: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돌판을 가리킵니다. 바깥에 새겨진 법입니다. 옳은 길을 분명하게 보여 주지만, 그 길을 걸을 마음까지 새겨 주지는 못합니다.
  • 없어질: 원어 카타르게오. 효력을 잃는다, 작동을 멈춘다는 뜻입니다. 3장에서 네 번 나오는 말입니다. 모세 얼굴의 빛이 서서히 사라졌듯이, 옛 언약의 직분도 제 역할을 다하고 물러나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 하물며: 원어로는 어찌 더 그렇지 않겠는가 하는 구문입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올라가는 논증입니다. 앞의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의 것이 이만큼이었으니 뒤의 것은 얼마나 크겠느냐고 묻는 방식입니다.
  • 영의 직분: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하시도록 섬기는 일입니다. 바깥에서 규칙을 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안에서부터 사람을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 정죄: 원어 카타크리시스. 판결을 내려 유죄를 선고한다는 뜻의 법정 용어입니다. 율법은 무엇이 잘못인지 정확하게 판단해 줍니다. 그러나 판결을 내리는 것과 피고를 살리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 : 원어 디카이오쉬네. 역시 법정의 언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인정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정죄의 반대편에 놓인 단어로,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물로 주어지는 것으로 봅니다.
  • 넘치다: 원어 페리슈오. 그릇에 다 담기지 않고 흘러넘친다는 뜻입니다. 새 언약의 영광은 겨우 조금 더 큰 것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넘친다는 말입니다.
  • 영원한 것: 원어로는 머무는 것, 남아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라져 가는 것과 대비됩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효력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주목해볼 표현

  1. 돌에 새긴 문자의 직분도 영광스러워” (7절)
    • 바울은 옛 언약을 비난하면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그것이 영광스러웠다고 인정합니다.
    • 더 좋은 것을 말하기 위해 이전 것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의 논증은 이전 것이 진짜 영광이었다는 전제 위에서만 힘을 가집니다.
  2. 모세 얼굴에 나타난 없어질 영광” (7절)
    • 모세의 얼굴에서 나던 빛은 진짜였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멀어지면 차츰 희미해지는 빛이었습니다.
    • 바울은 이 한 장면 안에 옛 언약 전체의 성격을 담아냅니다. 참되지만 잠시 있는 것, 빛나지만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3. 하물며 영의 직분에는” (8절)
    • 이 짧은 한 마디가 본문 전체의 방향을 정합니다. 바울은 비교가 아니라 상승을 말합니다.
    • 돌판의 직분이 사람들의 눈을 가리게 할 만큼 빛났다면, 사람 마음 안에서 성령께서 일하시는 직분은 그보다 더 큰 빛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눈에 덜 보인다고 덜 영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4. 정죄의 직분“과 “의의 직분” (9절)
    • 두 직분이 모두 법정의 언어로 묘사됩니다. 한쪽은 유죄를 선고하고 다른 쪽은 의롭다고 선언합니다.
    • 같은 법정, 같은 피고인데 선고가 다릅니다. 새 언약의 일꾼이 하는 일은 사람에게 판결문을 읽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내려진 무죄 선언을 전하는 일입니다.
  5. 더 큰 영광이 나타남으로 인해” (10절)
    • 이전의 빛이 가짜여서 빛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더 큰 빛이 떴기 때문입니다.
    • 해가 뜨면 등불이 자리를 내어 줍니다. 등불의 실패가 아니라 등불이 기다리던 아침이 온 것입니다.
  6. 영원한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11절)
    • 바울은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을 나란히 둡니다. 둘 다 영광이지만 무게가 다릅니다.
    • 이 문장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쪽 영광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까.

본문의 주요 내용

  1. 옛 언약도 참된 영광을 가지고 있었다 (7절).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사람이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빛나는 영광과 함께 왔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논증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2. 그러나 그 영광은 죽음과 정죄로 이어지는 직분이었다 (7, 9절). 율법은 옳은 길을 보여 주지만 사람에게 그 길을 걸을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 앞에 선 사람은 결국 자기의 실패를 확인하게 됩니다.
  3. 영의 직분은 생명과 의를 전한다 (8-9절). 새 언약의 일꾼은 판결문을 낭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사람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시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4. 더 큰 빛 앞에서 이전의 빛은 자리를 내어 준다 (10절). 옛 언약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던 분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큰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5. 사라질 것과 영원한 것은 영광의 무게가 다르다 (11절). 바울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보다 끝까지 남는 것을 붙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보면, 초라해 보이는 자신의 사역에 더 큰 영광이 있다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 본문을 읽다 보면 한 장면에서 오래 머물게 됩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입니다.

그 얼굴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할 만큼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마주한 흔적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빛에 한 단어를 붙입니다. 없어질. 그 빛은 진짜였지만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조금씩 희미해졌습니다.

이 장면이 오래 남는 이유는 우리도 그런 빛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만난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예배 중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말씀 한 줄이 가슴에 박히고, 이제는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날 말입니다. 그런데 그 빛은 생각보다 빨리 흐려집니다. 월요일 아침이 오고, 익숙한 짜증과 익숙한 두려움이 돌아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빛을 붙잡아 두려고 애씁니다. 그날의 감정을 다시 불러오려고, 그 뜨거움을 증명하려고 애씁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빛나는 얼굴을 유지하는 것이 새 언약의 영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영광은 바깥에서 비치는 빛이 아니라 안에서 일하시는 영에게서 옵니다. 돌판이 아니라 마음 판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감정의 온도에 따라 켜졌다 꺼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 얼굴에서 빛이 나든 나지 않든 계속됩니다.

두 번째로 마음에 걸리는 것은 9절입니다. 정죄의 직분과 의의 직분.

이 두 표현을 나란히 놓고 보면 불편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나는 어느 쪽 직분을 하고 있는가.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모세와 자기를 비교하는 이야기이지만, 이 구분은 오늘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옳은 것을 아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확히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적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누군가 살아나는 것을 본 적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보면, 대답이 쉽지 않습니다.

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린다는 6절의 말씀은 율법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말과 태도에도 그대로 비춰 볼 수 있습니다. 규칙을 아무리 정확하게 전해도, 그 규칙이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전해지지 않으면 결국 판결문이 됩니다. 판결문은 정확할수록 무겁습니다. 우리가 부름받은 것은 판결문을 읽어 주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내려진 다른 선고를 전하는 일입니다. 너는 정죄받지 않았다. 너는 의롭다 함을 받았다. 이 말을 전하는 일이 의의 직분이고, 바울은 그 일에 더 넘치는 영광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옳고 그름을 말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 자신도 이 편지에서 분명하게 잘못을 지적합니다. 다만 그 지적이 어디를 향하는지가 다릅니다. 정죄의 직분은 판결에서 멈춥니다. 의의 직분은 판결 너머의 길을 보여 줍니다. 같은 말을 해도 한쪽은 문을 닫고 다른 쪽은 문을 엽니다.

세 번째는 10절입니다. 한때 영광스럽던 것이 더 큰 영광 때문에 더 이상 영광스럽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조용히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여전히 가장 밝은 빛으로 여기고 있는가. 한때 나를 지탱해 주던 것들이 있습니다. 쌓아 온 경력, 인정받던 자리, 남들보다 잘하던 일, 신앙 안에서 이룬 성취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모세 얼굴의 빛처럼 진짜 빛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빛 앞에 그것들을 놓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등불을 붙들고 한낮을 걷고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등불을 내려놓는다고 어두워지지 않습니다. 해가 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등불을 붙들고 있는 동안에는 해를 올려다보지 않게 됩니다. 손에 쥔 작은 빛에 눈이 익숙해져서 하늘을 볼 이유를 잊어버립니다. 10절은 그 손을 조금 펴 보라고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본문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배경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바울은 이 글을 초라해 보이는 자리에서 썼습니다. 그는 추천서가 없었고, 고린도 사람들 사이에서 말주변이 없다는 평을 들었고, 몸에는 매 맞은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직분이 모세의 직분보다 더 영광스럽다고 말합니다. 억지처럼 들릴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영광을 다른 곳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눈에 띄는 광채가 아니라 살아나는 생명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자기 섬김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특히 깊이 닿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 빛나는 얼굴 대신 지친 얼굴로 하루를 마치는 사람 말입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영의 직분이라면, 그것은 모세의 얼굴보다 더 큰 영광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 삶에 적용하기

  1. 희미해진 빛을 억지로 붙잡지 않기. 하나님을 가까이 느꼈던 날의 감정이 흐려졌다고 해서 신앙이 식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그 감정을 되살리려 애쓰기보다, 감정과 상관없이 계속되는 성령의 일을 신뢰해 보십시오.
  2. 내 말이 판결문이 되고 있지 않은지 살피기. 오늘 누군가의 잘못을 말해야 하는 자리가 있다면, 그 말이 문을 닫는 말인지 여는 말인지 한 번 생각해 보고 입을 여십시오. 옳은 말에 살리는 방향을 더하는 것이 의의 직분입니다.
  3. 내가 붙들고 있는 등불 하나 적어 보기. 한때는 빛이었지만 지금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종이에 하나만 적어 보십시오.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 밝은 빛의 자리에서 내려놓는 연습입니다.
  4. 보이지 않는 섬김에 이름 붙여 주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수고가 헛되지 않다고 말해 주십시오. 그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영의 직분이 여전히 영광스럽다는 확인이 됩니다.
  5. 사라질 것과 남을 것을 나누어 보기. 이번 주에 가장 많은 시간과 마음을 쓴 일을 떠올려 보고, 그것이 사라질 영광인지 남을 영광인지 조용히 물어보십시오. 이제 그만하면 됐습니다 (고린도후서 2:5-11)에서 보았던 용서와 위로처럼, 사람을 살리는 일은 대개 남는 쪽에 속합니다.

생각해보기

  1. 하나님을 가까이 느꼈던 기억 중에서 지금은 희미해진 것이 있는가? 그 빛이 흐려졌을 때 나는 무엇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 했는가?
  2.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로 판결을 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살리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인가?
  3. 지금 내 삶에서 가장 밝은 빛이라고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그리스도의 빛 옆에 두면 어떻게 보이는가?
  4.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하는 섬김을 나는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고 있는가?
  5. 오늘 하루 중에서 사라질 것이 아니라 남을 것에 쓴 시간은 얼마나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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