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람의 발걸음으로 위로하십니다 (고린도후서 7:2-7)
오늘의 말씀
[디도가 옴으로 받은 위로] (우리말성경)
7:2 여러분은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아무에게도 부당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손해를 입히지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7:3 내가 정죄하려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여러분이 우리 마음에 있어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7:4 나는 여러분에 대해 많은 신뢰감을 갖고 있고 여러분을 위해 자랑할 것도 많습니다. 우리의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내게는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7:5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 우리의 육체는 편치 못했고 사방으로는 환난을 당했습니다. 밖으로는 다툼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7:6 그러나 낙심한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디도를 돌아오게 하심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7:7 그가 돌아온 것뿐만 아니라 그가 여러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우리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내게 대해 사모하는 것과 애통해 하는 것과 열심을 내는 것에 대해 그의 보고를 받고 나는 더욱 기뻤습니다.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의 첫 문장 “여러분은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는 처음 듣는 말이 아닙니다. 6장 13절에서 바울은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라고 간청했습니다(좁아진 것은 내 마음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6:11-13). 그 사이에 우상과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단락(6:14-7:1)이 끼어 있었고, 이제 바울은 멈추었던 간청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원문의 “받아 주십시오”는 “자리를 내어 주십시오”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좁아진 마음에 우리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곧이어 바울은 세 번 “아무에게도”를 되풀이합니다. 부당한 일을 하지 않았고, 손해를 입히지 않았고, 속여 빼앗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또박또박 말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뒷부분을 보면, 바울이 헌금을 핑계로 교인들에게서 이익을 챙긴다는 의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12:16-18). 바울은 억울함을 쏟아 놓는 대신 짧게 사실만 말하고, 곧바로 “정죄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자기를 변호하는 일이 상대를 몰아세우는 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
3절의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라는 말은 고대 세계에서 깊은 우정을 표현할 때 쓰던 말과 닮았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고 말하는데, 바울은 순서를 바꾸어 “죽음”을 먼저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의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이 바울의 삶의 모양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4:10-11). 바울에게 고린도 교인들은 그 길을 끝까지 함께 걸을 사람들이었습니다.
5절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여행기로 돌아갑니다. 이 대목을 이해하려면 2장 12-13절을 다시 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전에 고린도 교회에 눈물로 쓴 편지를 보냈고(2:4), 그 편지를 들고 간 사람이 디도였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기다렸지만 디도는 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던 바울은 복음의 문이 열려 있던 드로아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건너갔습니다. 그 뒤로 2장 14절부터 7장 4절까지, 바울은 사역의 의미에 대한 긴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7장 5절에서 드로아 이야기의 다음 장면으로 돌아옵니다. 다섯 장 가까이 미뤄 두었던 이야기를 이제 마저 하는 것입니다.
마케도니아는 오늘날 그리스 북부 지역으로,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같은 교회들이 있던 곳입니다. 바울은 그곳에서도 쉬지 못했습니다. 2장 13절에서는 “내 마음(영)이 편치 않았다”고 했는데, 7장 5절에서는 “육체가 편치 못했다”고 말합니다.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큰 환난 가운데 있었다는 말이 8장 2절에도 나오니, 바깥의 “다툼”은 실제 반대와 박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의 “두려움”은 아마 고린도 교회가 그 눈물의 편지를 어떻게 받았을지, 디도는 무사한지에 대한 걱정이었을 것입니다.
6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낙심한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이사야 49장 13절, 곧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고난을 당하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씀과 울림이 닮았습니다. 여기서 “낙심한”으로 옮긴 말은 원래 “낮아진, 바닥에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닥에 내려앉은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이 짧은 단락에는 “위로”라는 말이 거듭 나옵니다(4, 6, 7절). 이 말은 고린도후서의 문을 여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편지 첫머리에서 하나님을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불렀고, 우리가 받은 위로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신다고 말했습니다(1:3-7,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7). 편지 첫 장에서 고백한 그 위로가 오늘 본문에서는 디도라는 한 사람의 도착으로 실제 장면이 되어 나타납니다.
7절은 그 위로가 어떻게 흘렀는지를 보여 줍니다. 디도는 먼저 고린도 교인들에게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교인들은 바울을 그리워했고, 지난 일을 아파했고, 바울을 위해 열심을 냈습니다. 디도는 그 위로를 안고 와서 바울을 위로했습니다. 고린도에서 디도에게로, 디도에게서 바울에게로 위로가 건너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7장 16절까지 이어지며, 바울은 그 편지가 교인들에게 어떤 슬픔과 회개를 낳았는지를 더 자세히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전체의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받아 주다: 원어 코레오. 공간을 내어 주다, 자리를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6장 12-13절의 “좁아졌다, 넓히라”는 말과 이어져, 마음에 방 한 칸을 내어 달라는 간청이 됩니다.
- 부당한 일을 하다: 원어 아디케오. 옳지 않게 대하여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 손해를 입히다: 원어 프테이로. 망가뜨리다, 해를 끼치다라는 뜻입니다. 신앙을 그르치게 만드는 일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 속여 빼앗다: 원어 플레오넥테오. 남보다 더 가지려고 이득을 챙기는 것입니다. 바울이 헌금 문제로 의심받던 상황과 맞닿아 있습니다.
- 신뢰감: 원어 파레시아. 숨김없이 터놓고 말하는 담대함을 뜻합니다. 영어 성경 가운데는 이 말을 “솔직하게 말했다”로 옮긴 것도 있습니다. 믿기 때문에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보여 줍니다.
- 위로: 원어 파라클레시스. “곁으로 부르다”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멀리서 건네는 말이 아니라 곁에 와서 함께 서 주는 것이 위로입니다.
- 환난: 원어 쓸립시스. 무거운 것에 눌리는 압박을 뜻합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 낙심한 사람: 원어 타페이노스. 낮아진 사람,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에게 오시는 분입니다.
- 돌아옴(도착): 원어 파루시아. 누군가가 와서 곁에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가리킬 때도 쓰이는 말입니다.
- 사모함: 원어 에피포테시스.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그리움입니다.
- 애통: 원어 오뒤르모스. 소리 내어 우는 깊은 슬픔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지난 일을 진심으로 아파했다는 뜻입니다.
- 열심: 원어 젤로스. 뜨거운 마음, 무엇을 위해 애쓰는 열정입니다.
주목해볼 표현
- “여러분은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7:2)
- 사도인 바울이 교인들에게 마음의 자리를 부탁합니다. 권위로 밀어붙이지 않고 관계를 구합니다.
- 관계가 틀어졌을 때 먼저 문을 두드리는 쪽이 지는 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 “여러분과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7:3)
- 순서가 “죽음”에서 “삶”으로 갑니다. 십자가에서 부활로 가는 복음의 순서와 같습니다.
- 좋은 날만 함께하는 관계가 아니라 가장 어두운 날까지 함께 있겠다는 약속입니다.
- “밖으로는 다툼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7:5)
- 위대한 사도가 자기 안의 두려움을 숨기지 않습니다. 믿음이 두려움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 바깥의 어려움과 마음속 불안이 겹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성경은 정직하게 말합니다.
- “낙심한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7:6)
- 하나님을 소개하는 말이 “낮아진 사람을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바닥에 있을 때 더 가까이 오시는 분입니다.
- 낙심이 믿음 없음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가 찾아오는 자리라는 것을 일깨웁니다.
- “디도를 돌아오게 하심으로” (7:6)
- 하나님의 위로는 하늘의 음성이 아니라 한 사람의 도착으로 왔습니다.
-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디도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 관계의 회복을 먼저 구한다 (7:2-3). 바울은 오해와 의심 앞에서도 교인들을 탓하지 않고, 마음의 자리를 내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들이 이미 자기 마음에 있다고, 함께 죽고 함께 살겠다고 말합니다.
- 환난 속에서도 기쁨이 넘칠 수 있다 (7:4). 바울의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위로와 기쁨이 가득합니다. 위로는 상황이 아니라 관계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 사도도 두려움 속에 있었다 (7:5). 바울은 몸도 마음도 쉬지 못했고, 밖의 다툼과 안의 두려움을 함께 겪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말합니다.
- 하나님은 낮아진 사람을 사람을 통해 위로하신다 (7:6). 낙심한 바울에게 하나님은 디도를 보내셨습니다. 기다리던 한 사람의 얼굴이 하나님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 위로는 흘러가며 커진다 (7:7).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위로했고, 디도가 그 위로를 가지고 와서 바울을 위로했습니다. 위로가 건너갈 때마다 기쁨은 더 커졌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 본문에서 가장 오래 눈이 머무는 곳은 5절입니다. 밖으로는 다툼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를 여기까지 읽어 온 사람이라면 이 고백이 조금 놀랍습니다. 바로 앞에서 바울은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말했고, 겉사람은 낡아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바울이 이제 자기 안에 두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이 신앙의 실제 모양에 더 가깝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도 자주 그 자리에 섭니다. 바깥에서는 일이 꼬이고, 사람들 사이에 마찰이 생기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쌓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를 더 지치게 하는 것은 바깥의 일보다 안의 두려움일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람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 일이 어떻게 끝날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은 아닐까. 바울이 드로아에서 디도를 기다리며 가졌던 마음이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눈물로 쓴 편지를 보내 놓고, 그 편지가 관계를 살릴지 끝장낼지 모르는 채 기다리는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 6절은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낙심한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이 “그러나”는 늘 하나님이 들어오시는 자리입니다. 바울의 형편이 저절로 풀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가 어떤 모양으로 왔는지가 이 본문의 깊은 은혜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음성이 들린 것이 아닙니다. 기다리던 사람 하나가 길 저편에서 걸어왔습니다. 디도가 도착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무언가 특별한 경험으로만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 중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순간, 말씀 한 구절이 가슴에 꽂히는 순간도 분명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하나님이 아주 자주 사람의 발걸음으로 위로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안부를 묻는 짧은 연락,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주는 시간,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의 얼굴. 그런 평범한 도착 속에 “낙심한 사람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나쳐 온 많은 만남이 사실은 하나님이 보내신 디도였는지도 모릅니다.
7절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바울을 위로한 것은 디도의 얼굴만이 아니었습니다. 디도가 고린도에서 받아 온 위로가 함께 왔습니다. 교인들이 바울을 그리워하고, 지난 일을 아파하고, 바울을 위해 마음을 쏟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위로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가며 점점 커졌습니다. 위로는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입니다. 받은 사람이 다시 건네줄 때 더 깊어집니다. 편지 첫머리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위로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두 가지 질문을 함께 건넵니다. 하나는, 지금 낙심해 있다면 하나님이 보내시는 디도를 알아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낙심이 깊을 때 우리는 문을 닫고 혼자 버티려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두려움 속에서도 디도를 기다렸고, 디도가 왔을 때 그 도착을 하나님의 위로로 받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누군가의 디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디도가 한 일은 대단한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야 할 곳에 갔고, 받은 소식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 걸음이 한 사도를 다시 일으켰습니다.
4절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내게는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바울은 환난이 끝난 뒤에 기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기쁘다고 말합니다. 마케도니아의 형편은 디도가 온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툼은 여전했고 몸은 여전히 고단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관계였습니다. 끊어질까 두려웠던 관계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같은 환난 속에서도 기쁨이 넘쳤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풀려야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을 바꾸시기 전에 먼저 우리 곁에 사람을 세우시고, 그 사람을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처음으로 돌아가면 바울의 간청이 다시 들립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바울은 의심을 받는 자리에서도 관계를 놓지 않았습니다.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여러분은 우리 마음에 있다고, 함께 죽고 함께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디도가 가져온 위로는 이렇게 끝까지 문을 두드린 마음 위에 찾아왔습니다. 관계가 틀어진 자리에서 먼저 자리를 내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약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 위로의 길을 여십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드릴 수 있는 기도는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주님, 밖의 다툼과 안의 두려움을 감추지 않고 주님 앞에 내놓게 하소서. 주님이 보내시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주소서.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 주님의 위로를 들고 가는 발걸음이 되게 하소서.
내 삶에 적용하기
- 안과 밖을 나누어 적어 보기. 지금 나를 누르고 있는 것을 “밖의 다툼”과 “안의 두려움”으로 나누어 적어 보십시오. 이름을 붙여 하나님 앞에 내놓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은 조금 작아집니다.
- 최근에 받은 작은 위로 하나 떠올리기. 지난 며칠 동안 누군가의 연락이나 방문, 한마디 말에서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면 떠올려 보십시오. 그 안에 계셨던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 보십시오.
- 오늘 한 사람의 디도가 되기. 낙심해 있을 것 같은 사람 한 명을 떠올리고, 오늘 안부를 묻거나 찾아가 보십시오. 긴 말이 아니어도 됩니다. 곁에 와 주는 것 자체가 위로입니다.
- 받은 위로를 흘려보내기. 누군가에게서 들은 좋은 소식이나 감사의 말이 있다면, 그것을 들어야 할 사람에게 전해 보십시오. 디도처럼 위로를 옮기는 사람이 되는 연습입니다.
- 먼저 문을 두드리기. 마음이 멀어진 관계가 있다면, 정죄하는 말이 아니라 “당신은 여전히 내 마음에 있다”는 말로 먼저 다가가 보십시오. 지난 본문 좁아진 것은 내 마음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6:11-13)에서 마음을 넓혀 달라고 구했던 것처럼, 오늘은 그 넓어진 마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생각해보기
- 지금 내게 “밖의 다툼”은 무엇이고 “안의 두려움”은 무엇인가?
- 나는 낙심할 때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말하는가, 아니면 괜찮은 척 버티는가?
-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나를 위로하셨던 때는 언제였는가? 그때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위로로 알아보았는가?
- 지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디도가 될 수 있는가?
- 관계가 틀어진 자리에서 나는 먼저 자리를 내어 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무엇이 그 말을 어렵게 하는가?
태그: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7장 #고후7장2-7절 #바울 #디도 #고린도교회 #마케도니아 #드로아 #위로 #하나님의위로 #낙심 #낙심한자를위로하시는하나님 #두려움 #환난 #기쁨 #관계회복 #화해 #마음을넓히라 #함께죽고함께살고 #이사야49장 #말씀묵상 #묵상 #매일묵상 #큐티 #묵상가이드 #고린도후서묵상 #2Corinthians #Titus #Comfort #GodWhoComf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