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이 아니라 자비로 (고린도후서 4:1-6)
오늘의 말씀
[자비로 받은 직분] (우리말성경)
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이 직분을 받은 사실을 생각해 낙심하지 않습니다.
2 오히려 우리는 숨겨진 수치스런 일들을 버렸고 간교하게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의 양심에 우리 스스로를 추천합니다.
3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4 그들로 말하자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을 비추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 되신 것과 예수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의 종 된 것을 전파합니다.
6 “어둠에서 빛이 비치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셨기 때문입니다.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앞 장에서 이어지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3장에서 바울은 두 가지 직분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돌판에 새긴 옛 언약의 직분과 마음에 새긴 새 언약의 직분입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빛나다 사라지던 영광과,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을 바라보며 점점 더 밝아지는 영광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받은 것이 바로 그 새 언약의 직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면 낙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낙심이라는 말이 나올까요.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추천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었고, 바울에게도 추천서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3:1). 말솜씨가 시원찮다, 직접 와서 보니 별것 없더라, 편지만 무겁다는 평도 따라다녔습니다(10:10). 한마디로 자격 시비였습니다. 너는 무슨 자격으로 사도라고 하느냐.
바울의 대답이 1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이 직분을 받았다. 자격을 증명하는 대신 받은 경위를 말합니다. 이 직분은 내가 따낸 것이 아니라 긍휼을 입어 받은 것이다.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도 같은 말을 씁니다.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였으나 긍휼을 입었다(딤전 1:13). 교회를 무너뜨리러 다니던 사람이 사도가 된 것은 그의 이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직분을 지키는 힘도 그의 이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2절에서 바울은 반대자들이 쓰던 방식과 자기 방식을 구별합니다. 숨긴 것이 없고, 꾀를 부리지 않고, 말씀에 다른 것을 섞지 않았다. 그가 내놓는 추천서는 종이가 아니라 드러난 진리 자체입니다. 판단은 사람들의 양심과 하나님 앞에 맡깁니다.
3-4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에 답합니다. 그렇게 분명한 복음이라면 왜 어떤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가. 바울은 3장의 수건 이야기를 이어받습니다. 복음이 가려져 보인다면, 가려진 것은 복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 그들의 마음을 눈멀게 했습니다. 메시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빛을 막는 힘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바울은 자기 사역을 한 줄로 요약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지 않는다. 전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예수 때문에 여러분의 종이라는 것. 자격 시비에 휘말린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대답입니다. 그는 자기 자격을 높이지 않고, 자기 자리를 종으로 낮춥니다.
마지막 6절에서 바울은 창세기 1장으로 돌아갑니다. 빛이 있으라 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도 빛을 비추셨다. 바울에게 이 말은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행 9:3). 그 빛 속에서 그는 예수의 얼굴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직분은 그날 시작되었고, 그날 그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빛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에게 비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전체의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에 정리해 두었고, 바로 앞 단락은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됩니다 (고린도후서 3:12-18)에서 다루었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직분: 원어 디아코니아. 섬김이라는 뜻입니다. 높은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맡겨진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3장에서 바울은 이 단어로 새 언약의 직분, 영의 직분, 의의 직분을 말했습니다.
- 자비하심을 힘입다: 원어 엘레에오의 수동형. 긍휼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받는 쪽에 서 있었다는 말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3절, 16절에서 바울이 자기 회심을 말할 때 쓴 단어와 같습니다.
- 낙심하다: 원어 엥카케오. 지쳐서 손을 놓는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16절에서 한 번 더 나옵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 4장 전체를 감싸는 말입니다.
- 간교하게 행하다: 원어 파누르기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에서 나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교활함을 가리키게 된 말입니다. 11장 3절에서 뱀이 하와를 속인 간계를 말할 때도 이 단어를 씁니다.
- 혼탁하게 하다: 원어 돌로오. 순수한 것에 다른 것을 섞는다는 뜻입니다. 금에 싼 금속을 섞거나 포도주에 물을 타는 일을 두고 쓰던 말입니다. 말씀을 듣기 좋게, 팔기 좋게 섞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 추천하다: 원어 쉬니스테미. 3장 1절의 추천서 이야기와 같은 계열의 말입니다. 바울은 종이 추천서 대신 드러난 진리를 자기 추천서로 내놓습니다.
- 가려지다: 원어 칼륍토. 덮는다는 뜻으로, 3장에서 모세가 얼굴에 쓴 수건과 같은 어근입니다. 수건 이야기가 4장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이 세상의 신: 원어를 그대로 옮기면 이 시대의 신입니다. 하나님께 맞서는 악한 권세, 곧 사탄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르셨습니다(요 12:31).
- 혼미하게 하다: 원어 튀플로오. 눈을 멀게 한다는 뜻입니다. 빛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빛을 볼 눈이 막힌 상태입니다.
- 형상: 원어 에이콘.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보여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인다는 뜻입니다.
- 종: 원어 둘로스. 품삯을 받는 일꾼이 아니라 주인에게 속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자기를 교인들의 종이라고 부르면서, 그 이유를 예수 때문이라고 붙입니다.
- 얼굴: 원어 프로소폰. 3장에서 빛나던 모세의 얼굴과 짝을 이룹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보입니다.
주목해볼 표현
-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이 직분을 받은 사실을 생각해” (1절)
-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근거는 자기 실력이 아니라 직분을 받은 경위입니다. 받은 방식이 자비였으니, 유지되는 방식도 자비입니다.
- 자격으로 받은 자리는 자격이 흔들리면 같이 흔들립니다. 자비로 받은 자리는 내가 흔들려도 그대로 있습니다.
- “우리 스스로를 추천합니다” (2절)
- 추천서가 없다는 비난에 바울은 다른 종류의 추천서를 내놓습니다. 숨김없이 드러난 삶과 섞지 않은 말씀입니다.
- 그리고 판정은 사람들의 양심과 하나님 앞에 맡깁니다. 자기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고, 드러나게 두는 쪽을 택합니다.
-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면” (3절)
- 전해도 안 들리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바울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전하는 사람의 부족함에서 찾지 않습니다.
- 가려진 것은 복음이 아니라 듣는 쪽의 눈입니다. 결과가 안 보일 때 곧바로 나를 탓하는 버릇을 이 문장이 멈추게 합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5절)
- 자격 시비 한가운데서 바울은 자기를 변호하는 대신 자기를 뺍니다. 메시지의 중심에서 자기를 내려놓습니다.
- 설교가 나를 보여 주는 자리가 되면 내 부족함이 곧 설교의 실패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자리가 되면 내 부족함은 설교의 중심이 아닙니다.
- “예수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의 종 된 것” (5절)
- 바울이 스스로를 소개하는 이름은 사도가 아니라 종입니다. 그것도 예수 때문에 된 종입니다.
- 섬기는 사람의 자리는 증명할 필요가 없는 자리입니다. 주인이 이미 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마음에 … 빛을 비추셨기 때문입니다” (6절)
- 창조 첫날 어둠 속에 빛을 부르신 분이, 한 사람의 어두운 마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 이 문장의 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입니다. 빛을 만든 것도, 비춘 것도 그분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그 빛을 받은 데서 시작합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 직분은 자비로 받은 것이다 (1절). 바울은 자격 시비에 이력으로 답하지 않습니다. 이 직분은 긍휼을 입어 받은 것이고, 그 사실이 그를 낙심에서 지킵니다.
- 드러난 진리가 추천서다 (2절). 숨긴 것 없이, 꾀 없이, 섞지 않은 말씀을 전하는 삶이 사람들의 양심 앞에서 그를 증명합니다.
- 가려짐은 복음의 약함이 아니다 (3-4절). 복음이 들리지 않는 것은 빛이 약해서가 아니라 눈을 가리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 전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다 (5절). 설교자는 예수가 주님이심을 전하고, 자기는 그분 때문에 섬기는 종으로 섭니다.
- 모든 것은 하나님이 비추신 빛에서 시작된다 (6절). 어둠에 빛을 부르신 창조주가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게 하셨습니다. 직분도, 담대함도 그 빛에서 나옵니다.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맡겨 주셨기에
사람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두고 시비를 걸었을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오늘 본문을 읽으며 가장 오래 붙든 질문입니다.
나는 바울도 흔들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나를 두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보통 사람은 곧바로 아닌데, 나는 당당한데, 하고 나서지 못합니다. 먼저 자기를 돌아봅니다. 혹시 그 말이 맞는 것은 아닌가. 바울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에게도 그런 밤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특별한 것은 흔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도전 앞에서 무너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오만하게 굴지도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편지와 편지 사이에서, 주님과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그는 다시 용기를 얻고 부르심을 다시 확인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다시 일어선 사람이 쓴 편지입니다.
세 차례의 전도여행에서 그가 보여 준 굳셈도 같은 곳에서 왔을 것입니다.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려졌을 때, 사람들이 목숨을 노리고 뒤쫓아 올 때, 그 모든 순간에 자기에 대한 회의가 없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무엇이 그를 다시 일으켰을까. 나의 대답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1절이 말하는 그대로, 이 직분을 받은 사실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그의 힘이었습니다.
이 본문이 지금의 나에게 가깝게 들립니다. 여러 번 문을 두드렸고, 여러 번 닫힌 것을 확인했습니다. 무엇이든 잘 풀리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러다 한 자리에서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제안이 내 실력을 믿는다는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를 믿어 준 것이지, 내 능력을 확인해 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스스로를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솔직히 미약합니다.
그런 가운데 이번 주일에 설교를 해야 합니다. 그것도 영어로. 쉽지 않을 것을 압니다. 어쩌면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일을 하려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내가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나를 믿어 주는 목사님들이 있고, 곁에서 믿어 주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있고, 무엇보다 이 기회를 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오늘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억양이 강했고, 문법이 틀린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히 설교였습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나는 조용기 목사님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라고 그런 설교를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코리안 키위 억양이 남아 있고 문장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잘 준비된 설교와 주님의 은혜가 나의 부족함을 덮을 것이라 믿습니다.
5절이 이 믿음에 이유를 붙여 줍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지 않는다. 설교가 나를 보여 주는 자리라면 내 억양과 문법이 곧 설교의 성패가 됩니다. 그러나 설교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내 부족함은 설교의 중심이 아닙니다. 빛을 비추시는 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니 기도는 이렇게 됩니다. 내가 망신당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주님이 망신당하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주님이 나를 믿어 주셨는데.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설교가 아니라, 한 번 주어진 이 기회에, 단 한 번의 설교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온전히 전하게 해 달라고.
내가 자격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은혜로 합니다.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설교 준비를 잘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몫입니다.
내 삶에 적용하기
- 내가 받은 자리를 어떻게 받았는지 적어 보기. 지금 맡은 일, 지금 서 있는 자리를 하나 정해서, 그것이 내 자격으로 얻은 것인지 누군가의 신뢰와 하나님의 자비로 받은 것인지 적어 보십시오. 받은 경위를 기억하면 흔들릴 때 설 자리가 생깁니다.
- 자격 시비 앞에서 먼저 하나님 앞에 서기. 누군가의 평가나 내 안의 의심이 나를 흔들 때, 바로 반박하거나 무너지기 전에 주님과 보내는 시간을 먼저 가져 보십시오. 바울의 담대함은 편지와 편지 사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 나를 보여 주려는 마음을 하나 내려놓기. 이번 주 맡은 일 가운데 잘 보이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의 중심에 나를 두고 있는지 그리스도를 두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 부족한 채로 준비하기. 완벽해진 다음에 하려고 미루는 일이 있다면, 부족한 지금 할 수 있는 준비 하나를 오늘 시작해 보십시오. 은혜는 준비된 자리에서 부족함을 덮습니다.
- 나를 믿어 준 사람들을 떠올려 보기.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7)에서 보았듯, 부르심은 혼자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믿어 준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고, 그 신뢰 뒤에 계신 하나님께 감사해 보십시오.
생각해보기
- 지금 나는 무엇으로 내 자리를 증명하려 하고 있는가? 자격인가, 받은 자비인가?
- 누군가 나를 의심할 때 나는 먼저 무너지는 편인가, 먼저 맞서는 편인가? 바울처럼 먼저 하나님 앞에 서 본 적이 있는가?
- 내가 전하고 보여 주는 것의 중심에 누가 있는가? 나인가, 그리스도인가?
-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뤄 둔 일 가운데, 은혜를 믿고 해 볼 일이 있는가?
- 어둠에 빛을 부르신 하나님이 오늘 내 마음의 어느 어두운 곳을 비추고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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