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보는 나, 하나님이 아시는 나 (고린도후서 6:6-10)
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일꾼이 걷는 길] (우리말성경)
6 또한 우리는 순결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합니다. 또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8 영광과 모욕, 비난과 칭찬을 동시에 겪으며 일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9 무명한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10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은 앞 단락에서 이어지는 긴 문장의 후반부입니다.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3절부터 10절까지가 사실상 한 문장입니다. 바울은 5장 끝에서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6장 1-2절에서는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자기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숨 가쁘게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4절의 표현대로 “우리 자신을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들로 추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추천하다”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화려한 추천서를 들고 들어온 순회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3장 1절에서 이미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추천서가 필요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말솜씨와 외모와 이력으로 자기를 증명했고,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일부는 그 기준으로 바울을 낮게 보았습니다. 바울은 거기에 맞서 자기 추천서를 내놓습니다. 그런데 그 추천서의 내용이 이상합니다. 학위나 업적 대신 매 맞음과 감옥과 배고픔이 적혀 있습니다.
이 목록은 짜임새가 분명합니다. 4-5절에는 견뎌 온 고난이 세 개씩 세 묶음으로 나옵니다. 오늘 본문 6-7절 앞부분에는 그 고난 속에서 지켜 온 것들이 이어집니다. 순결함, 지식, 오래 참음, 친절함, 성령, 거짓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깥에서 무엇이 닥쳐왔는지를 말한 뒤, 그 안에서 무엇이 바울을 붙들고 있었는지를 말하는 순서입니다. 성령이 이 목록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나머지 덕목들은 바울이 애써 쌓은 성품이라기보다 성령께서 맺으신 열매에 가깝습니다(갈 5:22).
7절 뒷부분부터는 문장의 결이 바뀝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이라는 말은 당시 군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로마 병사는 보통 오른손에 칼이나 창을, 왼손에 방패를 들었습니다. 공격할 때도 방어할 때도, 바울이 쥐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것, 곧 의였습니다. 그는 상대를 이기기 위해 속임수나 아첨을 무기로 쓰지 않았습니다. 4장 2절에서 말한 대로 “부끄러운 숨은 일들을 버리고” 진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만 싸웠습니다.
8절에 들어서면 바울은 정반대의 짝을 나란히 놓습니다. 영광과 모욕, 비난과 칭찬입니다. 바울은 어느 한쪽만 겪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도시에서는 신처럼 떠받들어졌고(행 14:11), 같은 여행길에서 돌에 맞아 성 밖으로 끌려 나갔습니다(행 14:19). 사람들의 평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혔습니다.
그리고 8절 후반부터 10절까지 이 단락의 절정이 나옵니다. “~같으나 ~이다”라는 짝이 일곱 번 이어집니다. 앞부분은 사람들이 바울을 보는 눈이고, 뒷부분은 하나님 앞에서의 실상입니다. 속이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진실했고, 무명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하나님께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살아 있었습니다.
9절의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는 시편 118편 18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으나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그 바로 앞 17절은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고난을 이 시편 기자의 자리에서 읽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다듬으셨지만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헬라 세계의 스토아 철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목록을 즐겨 썼습니다. 현자는 가난해도 흔들리지 않고, 매를 맞아도 평정을 잃지 않으며, 아무것도 없어도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바울의 말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스토아의 현자는 자기 안의 이성으로 버텼습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서 힘을 찾지 않았습니다. 4장 7절에서 말한 것처럼, 질그릇 같은 자기 안에 담긴 보배의 능력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10절의 마지막 짝,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는 바울의 실제 형편과 겹칩니다. 그는 천막을 만들며 자기 손으로 생활비를 벌었고(행 18:3),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가진 것이 거의 없는 떠돌이 전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고린도전서 3장 21-23절에서 이미 이렇게 썼습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고백입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순결함: 원어 하그노테스. 마음과 동기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흠 없어 보이는 것보다, 속에 섞인 다른 의도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 오래 참음: 원어 마크로튀미아. 직역하면 “길게 숨 쉬다”, 화가 나도 금방 터뜨리지 않고 오래 견딘다는 뜻입니다. 주로 사람을 향한 인내를 가리킵니다.
- 친절함: 원어 크레스토테스. 다정하고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상대를 이롭게 하려는 부드러움입니다.
- 거짓 없는 사랑: 원어 아가페 아뉘포크리토스. 아뉘포크리토스는 “가면을 쓰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위선자라는 말이 무대 위 배우에게서 나왔는데, 이 사랑은 연기가 아닌 사랑입니다.
- 의의 무기: 원어 호플라 디카이오쉬네스.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것을 무기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이기기 위해 무엇이든 쓰는 싸움이 아니라, 바른 방법으로만 하는 싸움입니다.
- 속이는 사람: 원어 플라노스. 사람을 그릇된 길로 끄는 자, 사기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대적들도 예수님을 이 말로 불렀습니다(마 27:63).
- 무명한 사람: 원어 아그노우메노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 징벌을 받다: 원어 파이듀오. 원래 아이를 가르치고 훈육한다는 말입니다. 벌주어 끝장내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우려는 다룸입니다.
- 가난한: 원어 프토코스. 조금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남의 도움 없이는 살기 어려운 처지를 말합니다.
- 부유하게 하다: 원어 플루티조. 부요하게 만들어 주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8장 9절에서 같은 계열의 말로 그리스도께서 가난해지셔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 가진: 원어 카테코. 그냥 가진 것이 아니라 단단히 붙들어 소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빈손처럼 보이는 바울이 실은 모든 것을 꽉 쥐고 있다는 역설입니다.
주목해볼 표현
-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과” (6절)
- 고난의 목록 바로 뒤에 성령과 사랑이 나옵니다. 바울을 버티게 한 것은 강철 같은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그 안에 부어 주신 사랑이었습니다.
- 사랑 앞에 “거짓 없는”이 붙어 있습니다. 고난이 길어지면 사랑은 쉽게 연기가 됩니다. 바울은 그 자리에서도 가면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7절)
- 공격할 때도 막을 때도 바울은 같은 것을 쥐고 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무기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 억울한 비난 앞에서 우리는 자주 상대와 같은 무기를 들고 싶어집니다. 바울은 그 유혹 앞에서도 의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 “영광과 모욕, 비난과 칭찬을 동시에 겪으며” (8절)
- 바울은 칭찬을 들었다고 들뜨지도, 모욕을 들었다고 무너지지도 않았습니다. 두 소리를 모두 겪으며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 칭찬과 비난이 둘 다 그를 정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구절의 힘입니다.
-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9절)
- 일곱 개의 짝 가운데 바울은 이 대목에서만 “보십시오”라고 외칩니다. 마치 죽었다고 여겨진 사람이 손을 들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 4장 10-11절에서 말한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삶이 바로 이것입니다. 죽음이 계속 닥쳐오지만,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드러납니다.
-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10절)
- 바울은 근심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근심하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은 실제로 마음 아픈 일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 기쁨은 근심이 없는 자리가 아니라 근심과 함께 있는 자리에 머뭅니다. 그리고 그 기쁨에는 “항상”이 붙어 있습니다.
-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10절)
- 일곱 개의 짝 가운데 마지막이고, 이 단락 전체를 마무리하는 고백입니다.
- 바울은 가진 것을 늘려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가졌는지를 다시 보게 되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 하나님의 일꾼은 고난 속에서 무엇을 지켰는지로 드러난다 (6-7절 상). 바울의 추천서에는 화려한 이력이 없습니다. 대신 매 맞고 굶주린 자리에서도 지켜 낸 순결과 인내와 친절과 사랑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성령이 계십니다.
- 바른 길은 바른 방법으로 걷는다 (7절 하). 오른손에도 왼손에도 의의 무기를 들었다는 것은, 공격하든 방어하든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방법만 쓴다는 뜻입니다. 목적이 옳아도 수단이 흐려지면 일꾼의 자격을 잃습니다.
- 사람의 평가는 뒤집혀도 부르심은 뒤집히지 않는다 (8절 상). 바울은 영광과 모욕, 칭찬과 비난을 모두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그가 누구인지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를 정한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 보이는 모습과 하나님 앞의 실상은 다를 수 있다 (8절 하-10절).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무명한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 같으나 살아 있습니다. 앞의 말은 세상의 눈이고 뒤의 말은 하나님의 눈입니다. 바울은 뒤의 말을 믿고 살았습니다.
-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은 아무것도 없어도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 (10절). 가난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그것은 바울이 가진 것이 돈이나 명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은 나눌수록 더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 본문을 천천히 읽다 보면 일곱 번 되풀이되는 “같으나”라는 말에서 자꾸 멈추게 됩니다. 속이는 사람 같으나, 무명한 사람 같으나, 죽은 사람 같으나,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가난한 사람 같으나,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이 “같으나” 앞에 놓인 말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바울을 보며 내린 평가입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아픈 말입니다. 바울은 그 말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였다는 것을 담담하게 인정합니다. 실제로 그는 자주 굶었고, 자주 매를 맞았고, 고린도 교회 안에서조차 의심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그 평가 바로 뒤에 다른 말을 붙입니다. 같으나, 진실하고. 같으나, 살아 있습니다.
이 대목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느 쪽 말을 붙들고 살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눈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안고 삽니다. 누군가는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볼 것이고, 누군가는 나를 별것 아닌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가는 생각보다 깊이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남의 말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나를 보는 눈이 되어 버립니다. “같으나”까지만 읽고 그 뒤를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명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다가, 정말로 나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바울이 이 긴 문장을 끝까지 밀고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뒤의 말을 하나님께로부터 들었기 때문입니다. 9절의 “유명하고”는 사람들에게 이름이 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알려져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것이 바울의 마지막 근거였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반대 방향의 질문도 던집니다. 8절에서 바울은 모욕과 비난만이 아니라 영광과 칭찬도 함께 겪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비난에 무너지는 것만큼이나 칭찬에 기대어 사는 데 익숙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면 힘이 나고, 알아주지 않으면 금세 맥이 빠집니다. 그렇다면 내 힘의 근원은 결국 사람들의 박수였던 셈입니다. 바울은 칭찬을 들은 날에도 모욕을 들은 날에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칭찬이 그를 높이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도 그를 넘어뜨리지 못했습니다. 둘 다 그의 중심에 닿지 않았습니다.
7절의 “의의 무기”도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억울한 말을 들으면 우리는 같은 무기를 집어 들고 싶어집니다. 상대가 나를 깎아내렸으니 나도 상대의 약점을 들추고 싶고, 상대가 나를 오해했으니 나도 상대를 비틀어 말하고 싶어집니다. 바울에게도 그런 유혹이 없었을 리 없습니다. 고린도의 반대자들은 그를 속이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싸움에서 상대의 무기를 빌리지 않았습니다. 오른손에도 왼손에도 의만 쥐었습니다. 이기는 것보다 바르게 서 있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10절 앞에서는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됩니다.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이 말씀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바울이 근심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좋으면 슬프지 않아야 한다고,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밝아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근심하는 사람처럼 보일 만큼 실제로 근심했습니다. 2장 4절에서 그는 많은 눈물로 편지를 썼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근심 한가운데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근심이 다 지나간 뒤에 오는 기쁨이 아니라, 근심과 나란히 걷는 기쁨이었습니다. 우리의 기쁨도 그렇게 올 수 있습니다. 문제가 풀려서가 아니라, 그 문제 속에서도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 때문에 오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짝 앞에 섭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대개 가진 것을 세며 삽니다. 통장, 경력, 관계, 건강, 내 이름 뒤에 붙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줄어들 때 우리 자신도 줄어드는 것처럼 느낍니다. 바울은 그 셈법을 뒤집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손에 쥔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에게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 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가난한 채로도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남긴 것은 돈이 아니라 복음이었습니다. 그 복음이 그들을 부요하게 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나는 무엇으로 나를 셈하고 있는가. 사람들의 눈에 비친 “같으나”로 나를 셈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붙여 주시는 그 뒤의 말로 나를 셈하고 있는가. 세상이 보는 나와 하나님이 아시는 나 사이에서,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이 아시는 나를 붙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자리에 서 보라는 초대입니다.
내 삶에 적용하기
- 나를 따라다니는 “같으나” 하나 적어 보기. 다른 사람에게 들었거나 스스로 붙여 온 평가 가운데 나를 오래 아프게 한 말이 있다면 하나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옆에 하나님이 나에 대해 하시는 말씀을 한 줄 적어 보십시오. 지난주 본문 눌려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7-12)의 질그릇 이야기가 그 한 줄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칭찬에 기대는 마음 살펴보기. 오늘 하루 누군가의 인정이나 반응에 마음이 크게 흔들린 순간이 있었다면 그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반응이 없었어도 나는 같은 일을 했을지 정직하게 물어보십시오.
- 억울한 자리에서 의의 무기만 들기.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고 있다면, 상대의 약점을 들추거나 말을 비트는 대신 할 수 있는 바른 행동 하나를 정해 보십시오. 이기는 것보다 바르게 서는 것을 택하는 연습입니다.
- 근심 곁에 있는 기쁨 하나 찾기. 지금 마음을 누르는 근심이 있다면 그것을 부인하지 마십시오. 대신 그 근심 곁에서도 여전히 감사할 수 있는 것 하나를 찾아 기도로 올려 보십시오.
- 가진 것으로 누군가를 부요하게 하기.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오늘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 위로의 말, 기도 한 줄입니다. 지난 본문 새로 지음 받은 사람은 화목을 전합니다 (고린도후서 5:16-21)에서 본 것처럼, 그리스도를 받은 사람은 받은 것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생각해보기
-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내린 평가 가운데, 어느새 내가 나를 보는 눈이 되어 버린 말은 무엇인가?
- 나는 비난에 무너지는 쪽인가, 칭찬에 기대는 쪽인가? 두 가지가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 억울한 자리에서 내가 자주 집어 드는 무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의의 무기인가?
- 근심과 기쁨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은 지금 나의 형편에 어떻게 들리는가?
-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는 지금 무엇을 잃을까 봐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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