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데살로니가후서 1:1-4)
오늘의 말씀
[인사] (쉬운성경)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 말하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더 자라고 서로에 대한 사랑도 점점 커 가고 있다고 하니,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4 우리는 여러분이 심한 핍박을 받고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는 것을 다른 교회에 자랑하였습니다.
배경 설명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문 기간은 안식일 세 번, 길게 잡아도 몇 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자마자 소동이 일어났고, 그는 밤중에 그 도시를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다음 도시인 베뢰아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결국 바울은 아테네까지 밀려 내려갑니다.
여기서부터가 이 편지의 진짜 시작입니다. 아테네에 도착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렸고, 디모데가 오자마자 그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돌려보냅니다(데살로니가전서 3장 1-2절). 자기가 못 가니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그 사이 바울은 고린도로 옮겨 갔고, 데살로니가를 다녀온 디모데가 고린도에서 그를 만나 소식을 전합니다. 그 사람들이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잘 지키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쓴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편지를 씁니다. 종말에 관해 잘못된 가르침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 전체의 배경과 흐름은 데살로니가후서 개론 —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몇 주 가르치고 쫓겨난 사람이, 남겨 두고 온 이들을 놓지 못해서 사람을 보내고, 편지를 보내고, 또 편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본문 네 절은 그 두 번째 편지의 첫머리입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실루아노: 사도행전의 ‘실라’와 같은 사람입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동행자로, 데살로니가에서 함께 고생한 사람입니다. 편지 첫머리에 이 세 이름이 나란히 놓인 것은, 받는 사람들이 이 세 얼굴을 다 안다는 뜻입니다.
- 은혜와 평화: 헬라식 인사(카리스)와 히브리식 인사(샬롬)를 겹쳐 놓은 바울 특유의 문안입니다. 형식적인 안부가 아니라, 지금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두 가지를 짚어 준 것입니다.
- 더욱더 자라고: 원어는 나무가 웃자라듯 넘치게 자란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유지가 아니라 성장입니다. 바울이 없는 동안 이들은 제자리걸음을 한 게 아니라 자랐습니다.
- 자랑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에 자랑했습니다.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 이야기를 좋게 하는 것 — 이것이 남겨 두고 온 사람을 대하는 바울의 방식이었습니다.
주목해볼 표현
-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3절)
- 걱정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떠나온 사람이 남은 사람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올라오는 감정은 보통 불안인데, 바울의 첫 반응은 감사였습니다.
- 그가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들을 지키는 분이 자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 “믿음이 더욱더 자라고 서로에 대한 사랑도 점점 커 가고” (3절)
- 바울이 없는데 자랐습니다. 없는데도 자란 게 아니라, 어쩌면 없었기 때문에 서로를 더 붙들었을지도 모릅니다.
- 잘 떠난 사람의 자리에는 공백이 아니라 서로가 채워집니다.
- “심한 핍박을 받고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4절)
- 상황이 나아져서 믿음이 자란 게 아닙니다. 상황은 그대로였고,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 믿음은 형편이 풀린 다음에 자라는 것이 아니라, 형편 한가운데서 자랍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 세 사람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1절) — 바울 혼자 보내는 편지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아는 얼굴 셋이 함께 서명했습니다. 편지 한 통에도 “우리는 아직 너희 편이다”라는 말이 담겨 있습니다.
- 필요한 것을 먼저 빈다 (2절) — 핍박받는 이들에게 바울이 구한 것은 상황의 반전이 아니라 은혜와 평화였습니다. 밖이 조용해지는 것보다 안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먼저입니다.
- 자란 것을 감사한다 (3절) — 바울은 자기 공로를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합니다. 자라게 하신 분이 따로 있습니다.
- 없는 자리에서 자랑한다 (4절) — 바울은 이들 이야기를 다른 교회에 하고 다녔습니다. 떠난 사람이 남은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일 중에, 이것이 의외로 크게 남습니다.
남겨진 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본문을 읽으면서 저는 자꾸 예수님이 겹쳐 보였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두고 떠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떠나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겠지만, 이 사람들은 계속 세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들을 지켜 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요한복음 17장 11절, 쉬운성경)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겠지만, 이 사람들은 계속 세상에 있습니다.” 남겨진 자들을 향한 마음이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심정이라고도 하셨습니다(누가복음 10장 3절).
그렇다면 예수님은 남겨진 이들에게 무엇을 남기셨습니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곁에 서서 붙들어 주실 분을 남기셨습니다.
바울은 무엇을 남겼습니까. 디모데와 편지를 남겼습니다. 자기가 갈 수 없으니 사람을 보내고, 그 사람도 계속 머물 수는 없으니 글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묻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저는 마하나임 청년들을 위해 「날마다 주님 앞에서」를 남겼고, 지금도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묵상들을 책으로 묶으려고 합니다. 이 친구들이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이 거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내 삶에 적용하기
- 떠난 자리에서 걱정 대신 감사하기 — 어떤 자리를 떠나 본 사람은 압니다. 남은 사람들이 자꾸 걸립니다. 잘 지낼까, 흔들리지는 않을까. 그런데 바울의 첫 문장은 걱정이 아니라 감사였습니다. 그들을 지키시는 분이 내가 아니라는 걸 인정할 때에야 감사가 나옵니다. 지난번 이름을 부르고, 길을 떠나다 (로마서 16:1-16)에서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법을 배웠다면, 오늘은 그 이름 옆에 감사할 것을 하나씩 붙여 볼 차례입니다.
- 없는 자리에서 좋게 말하기 —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다른 교회에 자랑했습니다. 본인들은 그 자리에 없었으니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그렇게 했습니다. 멀리서 들려온 좋은 소문 (로마서 16:17-27)에서 좋은 소식이 건너 건너 흘러오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 본문은 그 소식을 흘려보내는 쪽에 서 있습니다. 앞에서 하는 칭찬보다 뒤에서 하는 자랑이 훨씬 오래 갑니다.
- 찾아올 수 있는 길을 남겨 두기 —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 곁에서 돌볼 수 없다면, 남길 수 있는 것을 남겨야 합니다. 바울에게는 편지였고, 저에게는 매일의 묵상 기록입니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때 찾아올 수 있는 길 하나면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오늘 하루치를 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생각해보기
- 내가 떠나온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는가? 나는 그들을 걱정으로 대하고 있는가, 감사로 대하고 있는가?
- 내가 곁에 있어 주지 못할 때, 그들 곁에 남겨 둘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는데도 믿음이 자란 경험이 있는가? 그때 나를 자라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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