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마음을 넣어 주시는 하나님 (고린도후서 8:16-19)
오늘의 말씀
[디도를 보내다] (우리말성경)
8:16 여러분을 위해 디도의 마음에도 동일한 열심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8:17 디도는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더욱 열심을 내고 자진해 여러분에게로 갔습니다.
8:18 또 그와 함께한 형제를 보냈는데 그는 복음 전하는 일에 모든 교회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8:19 더구나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선한 뜻을 나타내기 위해 여러 교회의 임명을 받고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우리가 행하는 이 은혜로운 일을 돕는 사람입니다.
배경 설명
8장 앞부분에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헌금 이야기를 길게 이어 왔습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극한 가난 속에서도 넘치게 드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모든 나눔의 뿌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신 분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라는 고백이 그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그분이 가난해지셔서 우리가 부요해졌습니다, 고린도후서 8:8-11).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1년 전에 시작한 일을 이제 가진 것으로 마무리하라고 권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 바꿉니다. 왜 나누어야 하는지를 말하던 데서, 이 일을 실제로 누가 어떻게 맡아 진행할지를 말하는 데로 넘어갑니다. 신학에서 실무로 넘어가는 대목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실무적인 소개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시작합니다. “디도의 마음에도 동일한 열심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을 보내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디도는 고린도후서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아 마케도니아로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2장에 나왔고(고린도후서 2:13), 7장에서는 마침내 디도가 돌아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바울이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하나님은 사람의 발걸음으로 위로하십니다, 고린도후서 7:2-7). 디도는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가 가장 어려울 때 그 사이를 오가며 관계를 다시 이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 때문에 마음에 새 힘을 얻고 돌아온 사람이기도 했습니다(믿어 준 마음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7:13-16).
그런 디도가 이번에는 헌금을 마무리하는 일을 위해 다시 고린도로 갑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이 일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17절은 디도가 그 부탁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스스로 더욱 열심을 내어 갔다고 말합니다. 시켜서 간 것과 원해서 간 것이 한 사람 안에서 만난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의 이 마음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넣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18절과 19절에는 디도와 함께 가는 한 형제가 소개됩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로 모든 교회에서 칭찬받는 사람이고, 여러 교회가 직접 뽑아 이 헌금을 전달하는 길에 바울과 동행하도록 세운 사람이라는 것만 알려 줍니다. 이 형제가 누구였는지를 두고 교회 역사 속에서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본문은 끝내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아마 그가 누구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증언입니다.
이 형제가 “여러 교회의 임명”을 받았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큰돈이 오가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어지는 20-21절에서 “이 거액의 헌금을 맡아 봉사하는 일에 아무에게도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조심”한다고,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옳게 행하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 혼자 이 돈을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들이 직접 세운 사람이 함께 다니며 지켜보도록 했습니다. 실제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12장에서 바울은 디도가 여러분을 착취한 적이 있느냐고 되묻기까지 합니다(고린도후서 12:18). 투명함은 바울에게 선택이 아니라 복음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전체의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열심: 원어 스푸데. 서두름, 부지런함, 간절함을 뜻합니다. 8장에서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모습을 말할 때도 쓰인 단어로, 어떤 일에 마음이 쏠려 기꺼이 힘을 쏟는 상태입니다.
- 주시다: 원어 디도미. “넣어 주다, 두다”라는 뜻입니다. 디도의 열심이 디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두신 것이라는 고백이 이 동사에 담겨 있습니다.
- 요청: 원어 파라클레시스. 곁으로 불러 부탁하고 권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단어가 고린도후서 1장에서는 “위로”로 번역됩니다. 곁에 와서 붙드는 말이 위로도 되고 부탁도 됩니다.
- 자진해: 원어 아우다이레토스. “스스로 선택한”이라는 뜻입니다. 8:3에서 마케도니아 교인들이 “자원해서” 드렸다고 할 때도 같은 단어가 쓰였습니다. 누가 떠밀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이 먼저 움직인 것입니다.
- 칭찬: 원어 에파이노스. 사람들이 인정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 형제는 한두 사람이 아니라 “모든 교회”에서 신뢰를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 임명을 받다: 원어 케이로토네오. 본래 “손을 들다”라는 뜻으로, 손을 들어 투표해 뽑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형제는 바울이 혼자 고른 사람이 아니라 교회들이 함께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 함께 다니는 사람: 원어 쉰에크데모스. 먼 길을 함께 떠나는 길동무, 여행 동반자를 뜻합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의 동행자들을 부를 때도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 은혜로운 일: 원어 카리스. 8장 내내 이어지는 핵심 단어입니다. 바울은 헌금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사람 사이에서 흘러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돕다: 원어 디아코네오. 섬기다, 봉사하다는 뜻으로, 식탁 시중을 드는 일에서 나온 말입니다. 큰일을 맡았지만 그 일의 성격은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 선한 뜻: 원어 프로뒤미아. 기꺼이 하려는 마음, 앞서 나가는 마음입니다. 8:11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번역된 바로 그 단어입니다.
주목해볼 표현
- “동일한 열심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8:16)
- 바울은 디도를 칭찬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다른 사람을 향한 간절함이 생겼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고백입니다.
- “동일한”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품은 마음과 같은 마음을 하나님께서 디도에게도 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짐이 여러 사람의 짐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이어 주실 때입니다.
- “요청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더욱 열심을 내고 자진해” (8:17)
- 디도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탁받은 만큼만 하지 않았습니다. 부탁이 그의 마음에 들어가 스스로 원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 순종과 자원함은 서로 반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시면, 맡겨진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 됩니다.
- “모든 교회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 (8:18)
- 이름은 남지 않았지만 그의 신실함은 남았습니다. 그는 한 교회에서만 좋은 평판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여러 교회가 함께 인정한 사람이었습니다.
- 복음 전하는 일에서 받은 칭찬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의 평판은 재능이나 지위가 아니라 복음을 섬긴 삶에서 나왔습니다.
- “여러 교회의 임명을 받고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8:19)
- 바울은 헌금을 혼자 다루지 않았습니다. 교회들이 손을 들어 세운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다니게 했습니다.
- 신뢰는 말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 스스로 서는 것, 그것이 바울이 택한 길이었습니다.
- “주의 영광과 우리의 선한 뜻을 나타내기 위해” (8:19)
- 이 일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님의 영광이고, 다른 하나는 기꺼이 돕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돈을 모으고 전달하는 일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일의 크기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 영광을 드러냅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8:16). 바울은 디도의 열심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우리가 짜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 부탁받은 일이 원하는 일이 될 때 (8:17). 디도는 바울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 더 열심을 내어 고린도로 향했습니다. 맡겨진 일과 자원하는 마음이 한 사람 안에서 만났습니다.
- 이름 없이 신뢰받은 동역자 (8:18). 디도와 함께 간 형제는 이름이 남지 않았지만 모든 교회에서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이런 이들의 신실함 위에서 이어집니다.
- 함께 세우고 함께 지키는 섬김 (8:19). 이 형제는 여러 교회가 직접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영광과 선한 뜻을 드러내기 위해, 은혜로운 일을 투명하고 책임 있게 함께 감당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오늘 본문은 얼핏 보면 편지 끝에 붙는 소개말처럼 보입니다. 누구를 보내니 잘 맞아 달라는, 어느 단체의 공문에나 들어갈 법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천천히 읽어 보면, 이 짧은 네 절 안에 우리가 오래 붙들어야 할 질문이 여럿 들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간절함은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맡겨진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가. 내 이름이 남지 않아도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이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 기꺼이 서 있는가.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 질문들을 하나씩 짚어 보려고 합니다.
먼저 16절의 감사에 머물러 봅니다. 바울은 디도가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열심을 품은 것을 보고 디도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디도의 마음에 그 열심을 넣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가 품는 마음을 새롭게 보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꾸 마음에 걸리고, 어떤 공동체의 아픔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저 내 성격이나 감정으로 여기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두신 것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간절함은 우리가 노력해서 만들어 내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은 지금 누구를 향해 간절한가. 혹시 아무에게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마음이 너무 바빠서이거나 너무 지쳐서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억지로 열심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디도에게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나도 그 마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사한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의 마음에 다른 사람을 향한 열심을 넣어 주시는 분입니다.
17절은 디도가 어떻게 길을 떠났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는 바울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욱 열심을 내어 자진해 갔습니다. 우리 삶에도 부탁받아서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일을 맡깁니다. 그 일을 할 때 우리 마음은 대개 둘 중 하나입니다. 해야 하니까 하는 마음, 아니면 하고 싶어서 하는 마음입니다. 디도의 경우 이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탁이 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그 자신의 소원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맡겨진 일을 기쁨으로 하려고 마음먹어도, 지치고 힘든 날에는 그 결심이 쉽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16절과 17절을 함께 읽으면 순서가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마음을 주셨고, 그 마음을 받은 디도가 부탁을 자기 일로 품었습니다. 그러니 맡겨진 일이 무겁게만 느껴질 때,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내가 왜 이렇게 열심이 없을까 하는 자책이 아니라, 이 일을 맡기신 분이 누구이며 그분이 이 일에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을 알게 되면 부탁받은 일이 조금씩 원하는 일이 됩니다.
18절의 이름 없는 형제 앞에서는 조금 오래 머물게 됩니다. 그는 모든 교회에서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의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디도라는 이름은 기억하지만, 이 형제의 이름은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서운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삶이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복음을 위해 섬겼고, 여러 교회가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었고, 먼 길을 기꺼이 동행했습니다. 이름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름이 남는 일에 마음이 갑니다. 내가 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수고한 만큼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은 대부분 이 형제처럼 이름 없이 신실한 사람들의 손을 거쳐 이어져 왔습니다. 바울의 편지가 고린도에 닿고, 헌금이 예루살렘에 전해지기까지, 그 길 위에는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발걸음이 있었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 이름이 남지 않아도, 아무도 내가 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이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아십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이 본문은 조용히 초대합니다.
19절은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이 형제는 여러 교회가 손을 들어 세운 사람이었고, 바울과 함께 다니며 이 헌금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바울은 사도였습니다. 그가 정직하다는 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스스로 감시받는 자리에 섰습니다. 20-21절에서 그 이유를 말합니다.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옳게 행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의 일이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옳게 보이도록 조심했습니다. 그것은 체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이 자기의 부주의 때문에 의심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이 복음을 바라보는 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는 확신에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이 보아도 투명한 삶을 사는 것 역시 믿음의 일입니다. 혼자 맡지 않고 함께 맡는 것, 감추지 않고 보여 주는 것, 그것이 바울이 은혜로운 일을 지킨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모든 것이 “주의 영광과 우리의 선한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헌금을 모으고 사람을 보내고 동행자를 세우는 일은 대단해 보이지 않는 일입니다. 행정이고 절차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일에서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도 이런 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일, 맡은 돈을 정직하게 다루는 일, 누군가를 위해 길을 나서는 일,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의논하는 일입니다. 그런 작은 일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건네는 또 하나의 위로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주님, 디도의 마음에 열심을 넣어 주신 것처럼 제 마음에도 다른 사람을 향한 간절함을 주소서. 맡겨진 일을 의무로만 붙들지 않고 주님의 마음으로 품게 하소서. 이름이 남지 않아도 기뻐하며 섬기게 하시고, 주님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투명하게 살아 제 작은 일들 속에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내 삶에 적용하기
- 마음에 걸리는 한 사람 떠올리기. 요즘 자꾸 마음이 가는 사람이나 공동체가 있다면 그 이름을 적어 보십시오. 그 마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 그를 위해 기도하고, 할 수 있는 작은 일 하나를 정해 보십시오.
- 부탁받은 일을 다시 바라보기. 지금 맡아서 하고 있는 일 가운데 무겁게만 느껴지는 일을 하나 골라 보십시오. 그 일을 맡기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일지 묵상하며, 해야 하는 일을 원하는 일로 품을 수 있도록 기도해 보십시오.
- 이름 없이 하는 섬김 하나. 이번 주에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는 섬김을 하나 실천해 보십시오. 누가 했는지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연습하는 시간입니다.
- 함께 맡는 연습. 혼자 결정하고 혼자 처리해 오던 일 가운데, 특히 돈이나 책임이 얽힌 일이 있다면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나누고 의논해 보십시오. 투명함은 나를 지키고 공동체를 지킵니다.
- 곁의 동역자에게 감사하기. 내 곁에서 묵묵히 함께 길을 걸어 주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바울이 디도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했듯이, 그 사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해 보십시오.
생각해보기
- 지금 내 마음에 있는 다른 사람을 향한 간절함은 무엇이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내가 맡은 일 가운데 “해야 해서 하는 일”과 “원해서 하는 일”은 각각 무엇인가? 그 둘이 하나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 내 이름이 기억되지 않아도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나에게 있는가?
- 나는 하나님 앞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투명하게 살고 있는가? 감추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어디인가?
- 내 곁에서 함께 길을 걷는 동역자는 누구이며, 나는 그에게 어떤 동역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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