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바뀌어도 신실함은 남는다 (고린도후서 1:15-18)

오늘의 말씀

[바울의 계획 변경] (우리말성경)
15 나는 이런 확신이 있으므로 먼저 여러분에게 가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다시 두 번째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16 나는 여러분을 방문하고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다시 마케도니아에서 여러분에게로 돌아와 여러분의 파송을 받고 유대로 가고자 했습니다.
17 내가 이렇게 계획할 때 어찌 경솔히 행했겠습니까? 또 내가 이렇게 계획할 때 “예, 예”라고 했다가 금방 “아니오, 아니오”라고 하려고 육체를 따라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까?
18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한 말은 “예”가 “아니오”로 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이 신실한 증인이십니다.

배경 설명

어제 본문에서 바울은 자기 양심을 증인으로 세웠습니다. 세상에서나 고린도 사람들 앞에서나 같은 사람으로 살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말을 구체적인 사건 하나에 적용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을 의심하게 된 바로 그 사건, 여행 계획이 바뀐 일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끝부분에서 처음 계획을 밝혔습니다. 먼저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고린도로 가겠고, 어쩌면 겨울을 거기서 보낼 수도 있겠다고 했습니다(고전 16:5-7). 그런데 그 뒤에 계획이 한 번 바뀌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나오는 새 계획은 고린도에 먼저 들렀다가 북쪽 마케도니아로 올라가고, 다시 고린도로 내려와서 거기서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고린도를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방문하는 계획입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계획도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한 번 갔는데, 그 방문이 서로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약속했던 두 번째 방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가는 대신 눈물로 쓴 편지를 보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이 장 끝에서 바울이 직접 밝히는데, 오늘은 그 이유보다 먼저 고린도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은 가볍게 말하는 사람이다, 오겠다고 했다가 안 오는 사람이다, 자기 편한 대로 계획을 세우고 자기 편한 대로 바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비난에 답하다가 곧바로 자기가 전한 복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의심이 거기까지 번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행 약속 하나 못 지키는 사람이 전한 말씀이라면 그 말씀도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일정표를 두고 시작된 말이 바울이 전한 복음 전체를 흔드는 데까지 간 셈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사소한 일정 해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거운 자리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지키려는 것은 자기 체면이 아닙니다. 자기가 전한 복음의 신뢰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 문제에 답하는 방식이 뜻밖입니다. 계획이 바뀌지 않았다고 우기지 않습니다. 바뀐 것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대신 질문의 방향을 바꿉니다. 계획이 바뀌었느냐가 아니라, 그 계획이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었느냐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찾습니다.

작은 차이 하나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어제 본문에서 주로 “우리”라고 쓰던 바울이 오늘 15절부터 17절까지는 “나”라고 씁니다. 여행 계획은 자기 개인의 결정이었으니 그 책임을 동료들과 나누지 않고 혼자 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8절에서 다시 “우리가 여러분에게 한 말”로 돌아갑니다. 복음은 자기 혼자의 것이 아니라 함께 전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책임은 혼자 지고, 말씀은 함께 지키는 모습입니다.

편지 전체의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에, 어제 본문의 이야기는 앞과 뒤가 같은 사람 (고린도후서 1:12-14)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확신: 15절의 이 말은 원어로 페포이테시스, 믿고 기대는 마음을 뜻합니다. 바로 앞 14절에서 바울은 주 예수의 날에 서로가 서로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고린도에 두 번이나 가려고 했다는 말입니다. 계획의 출발점이 계산이 아니라 관계였다는 뜻입니다.
  • 두 번째 은혜: 원어 카리스는 은혜, 곧 값없이 받는 선물입니다. 사본에 따라 카라(기쁨)로 된 것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바울이 두 번 방문하려던 이유는 자기 일정의 편의가 아니라 고린도 사람들이 한 번 더 은혜를 누리게 하려는 데 있었다는 뜻입니다.
  • 파송: 원어 프로펨포는 먼 길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면서 필요한 것을 챙겨 보낸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의 역할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습니다(롬 15:24).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자기 길을 함께 보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만큼 이 교회를 동역자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 경솔히: 원어 엘라프리아는 가벼움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 여기 한 번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무게 없이 말하고 무게 없이 뒤집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에게 붙인 딱지가 바로 이 말이었습니다.
  • 육체를 따라: 원어 카타 사르카, 곧 사람의 욕심과 형편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어제 본문의 육체의 지혜와 같은 뿌리입니다. 나에게 유리한지, 나에게 편한지가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 예, 예 / 아니오, 아니오: 예수님은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고 하셨습니다(마 5:37, 개역개정). 바울을 비판한 사람들은 그 말을 비틀어서, 바울이 한 입으로 “예”와 “아니오”를 동시에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쪽으로도 빠져나갈 수 있게 두 대답을 다 쥐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 신실하십니다: 원어 피스토스는 믿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개역개정은 이 구절을 “하나님은 미쁘시니라”로 옮겼는데, 미쁘다는 믿음직하다는 뜻의 옛말입니다. 바울은 이 표현을 여러 편지에서 되풀이합니다(고전 1:9, 10:13, 살전 5:24). 그의 신앙고백 가운데 가장 짧고 가장 단단한 문장입니다.
  • : 18절의 원어 로고스는 일상의 약속만이 아니라 바울이 전한 말씀, 곧 복음 선포까지 함께 가리킵니다. 그래서 다음 절에서 곧바로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주목해볼 표현

  1. 나는 이런 확신이 있으므로” (15절)
    • 바울의 계획은 확신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확신은 앞 절에서 말한 관계에 대한 믿음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하고 서로의 자랑거리가 되리라는 믿음 말입니다.
    • 계획을 볼 때 우리는 보통 결과만 봅니다. 지켰는지 못 지켰는지만 따집니다. 바울은 계획이 어디서 나왔는지부터 보라고 합니다. 같은 계획이라도 사랑에서 나온 것과 계산에서 나온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2. 다시 두 번째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15절)
    • 두 번 가겠다는 계획은 바울에게 수고가 두 배로 드는 일이었습니다. 먼 길을 한 번 더 오가야 했습니다.
    • 그런데도 그는 그 계획의 목적을 자기에게 두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받을 은혜에 두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계획표를 읽는 열쇠입니다. 그의 일정은 처음부터 상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3. 어찌 경솔히 행했겠습니까” (17절)
    • 바울은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가져와서 되묻습니다. 숨기지도 돌려 말하지도 않습니다. 나에 대해 이런 말이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말을 정면으로 꺼냅니다.
    • 오해를 다룰 때 이 방식이 의외로 중요합니다. 뒤에서 도는 말은 그냥 두면 커집니다. 앞에 꺼내 놓아야 비로소 다룰 수 있습니다.
    • 동시에 바울은 이렇게 묻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변경이 아니라 가벼움입니다.
  4. 예, 예라고 했다가 금방 아니오, 아니오라고 하려고” (17절)
    • 여기서 비판의 핵심은 계획을 바꾼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두 대답을 다 쥐고 있었다는 의심입니다. 겉으로는 “예”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아니오”를 준비해 두는 사람, 그래서 어떤 상황이 와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 이것이 신뢰를 무너뜨리는 진짜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계획이 바뀌는 것에는 생각보다 너그럽습니다. 하지만 말할 때부터 빠져나갈 문을 열어 두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18절)
    • 바울은 자기 해명을 여기서 멈추고 하나님을 부릅니다. 이 문장은 일종의 맹세처럼 쓰였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걸고 말한다는 뜻입니다.
    • 주목할 것은 그가 자기 신실함을 먼저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믿을 만한 분이시다라고 합니다. 바울의 신뢰는 자기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빌려 온 것입니다.
    • 그래서 이 한 문장은 변호이면서 동시에 고백입니다. 내 계획은 흔들릴 수 있어도, 나를 붙들고 계신 분은 흔들리지 않으신다는 고백입니다.
  6. 예가 아니오로 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이 신실한 증인이십니다” (18절)
    • 바울은 일정이 아니라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여행 계획은 바뀌었지만, 자기가 고린도에 전한 복음은 한 번도 “예”였다가 “아니오”로 바뀐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 여기서 두 가지가 구분됩니다.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과 결코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일정을 바꾸었지만 복음을 바꾸지 않았고, 사람을 향한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 어제 본문에서 양심이 증인이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증인이십니다. 증인석에 서는 분이 더 커졌습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1. 바울의 계획은 사랑에서 시작됐다 (15절). 두 번 방문하려던 계획의 목적은 고린도 사람들이 두 번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계획의 뿌리가 관계였다는 사실은 계획이 틀어진 뒤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2. 바울은 계획이 바뀐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16-17절). 그는 일정표를 고쳐 쓰거나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은 바뀐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그가 부정한 것은 변경이 아니라 가벼움, 곧 처음부터 빠져나갈 생각으로 말했다는 의심이었습니다.
  3.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변경이 아니라 두 마음이다 (17절). “예”와 “아니오”를 동시에 쥐고 있는 태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모든 대답을 열어 두는 태도가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계획이 바뀌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4. 바울은 자기 신실함의 근거를 하나님께 두었다 (18절).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이 짧은 문장이 바울의 변호 전체를 떠받칩니다. 그의 믿음직함은 그의 성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께 붙들린 데서 나온 것입니다.
  5. 바뀔 수 있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18절). 일정은 바뀌었지만 복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방향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신실함은 모든 것을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을 끝까지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 본문을 읽으면 조금 안심이 됩니다. 바울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의 일정표도 여러 번 고쳐 써야 했습니다.

우리 삶에도 계획이 틀어지는 날이 많습니다. 가겠다고 한 자리에 못 가고, 하겠다고 한 일을 미루고, 지키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걱정합니다. 하나는 일이 틀어진 것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말만 하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볼까 봐 걱정합니다.

바울은 그 걱정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계획이 바뀌지 않은 척하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은 바뀐 대로 두었습니다. 대신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계획을 세울 때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는가. 나를 위한 계획이었는가, 너희를 위한 계획이었는가.

이 질문을 우리에게 돌려 보면 조금 아픕니다. 계획이 틀어진 이유를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정말로 어쩔 수 없었던 경우도 있지만, 내가 편한 쪽을 고른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제안이 들어와서, 몸이 귀찮아서, 그 사람보다 다른 사람이 더 중요해서 약속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육체를 따라 계획하는 것”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처음부터 빠져나갈 문을 열어 두는 습관입니다. “갈 수 있으면 갈게요”, “시간 되면 할게요”. 이런 말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직하게 여지를 두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 말이 어떤 약속에도 묶이지 않으려는 방패가 되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예”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아니오”를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장 강하게 부정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계획을 절대 바꾸지 않는 사람이 신실한 사람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계획을 바꾸었지만 신실했습니다. 신실함은 모든 것을 한 번 정한 대로 고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뀌어도 되는 것과 바뀌면 안 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일정은 바뀌어도 되는 것이었고, 복음과 사람을 향한 마음은 바뀌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장 끝에서 밝히듯이, 그가 두 번째 방문을 하지 않은 것도 결국 고린도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약속을 어긴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처음 마음을 지킨 것이었습니다.

어제 본문과 이어서 읽으면 하나가 더 보입니다. 어제 바울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으로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말이 실제 사건 앞에서 시험받는 장면입니다. 말로는 누구나 한결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결같음이 드러나는 것은 계획이 틀어지고 오해가 생긴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숨지 않고, 부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제 18절 앞에 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바울은 자기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말로 변호를 마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믿을 만한 분이시라는 말로 마쳤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큽니다. 우리의 신실함은 늘 불완전합니다. 오늘도 지키지 못한 말이 있을 것이고, 내일도 틀어지는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직함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넘어지는 날에도 무너지지 않는 바닥이 있습니다.

그 바닥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틀어진 계획 앞에서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변명을 쌓지 않고, 바뀐 것은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다시 약속하는 것입니다. 한 번 어긋났다고 해서 아예 약속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께 기대어 다시 “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누군가의 계획 변경 때문에 서운한 사람이 있다면, 고린도 사람들 자리에 한 번 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바울이 안 온 것만 보았습니다. 왜 안 왔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서운해하는 그 변경 뒤에도,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마음이 있을지 모릅니다.

내 삶에 적용하기

  1. 최근에 틀어진 약속 하나를 정직하게 돌아보기. 지키지 못한 약속이나 바꾼 계획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이유를 솔직하게 적어 보십시오.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내가 편한 쪽을 고른 것인지. 자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 계획이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이는지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2. 바뀐 것은 바뀌었다고 말하기. 틀어진 약속이 있다면, 변명을 길게 붙이기보다 짧고 분명하게 알려 보십시오. 바울은 바뀐 계획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3. 빠져나갈 문을 하나 닫기. “시간 되면”, “갈 수 있으면” 같은 말로 걸쳐 둔 약속이 있다면, 오늘 하나를 골라 분명한 “예” 또는 분명한 “아니오”로 바꾸어 보십시오. 분명한 “아니오”가 애매한 “예”보다 훨씬 신실합니다.
  4. 서운한 변경 뒤에 있는 마음 생각해 보기. 누군가의 바뀐 계획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면, 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물어보십시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5.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를 하루의 문장으로 삼기. 오늘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이 오면 이 한 문장을 떠올려 보십시오. 내 계획은 흔들려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7)에서 보았듯,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의 근거는 우리의 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생각해보기

  1. 최근에 내가 바꾼 계획 가운데, 사랑에서 나온 변경과 편리함에서 나온 변경은 각각 무엇이었는가?
  2. 나는 약속할 때 빠져나갈 문을 얼마나 자주 열어 두는가? 그 문을 열어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3. 내 삶에서 상황에 따라 바뀌어도 되는 것과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은 각각 무엇인가?
  4. 누군가의 계획 변경 때문에 서운했던 일이 있다면, 그 뒤에 내가 보지 못한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은 없는가?
  5.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라는 고백이 오늘 나의 약속과 계획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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