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신을 주께 드린 사람들 (고린도후서 8:1-7)
오늘의 말씀
[마케도니아 교회에 주신 은혜] (우리말성경)
8:1 형제들이여, 우리는 마케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분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8:2 그들은 수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기쁨이 넘쳤고 극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헌금을 했습니다.
8:3 내가 증언하는데 그들은 힘닿는 대로 했을 뿐 아니라 힘에 부치도록 자진해서 했습니다.
8:4 그들은 이 은혜와 성도 섬김의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8:5 그들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도 헌신했습니다.
8:6 그러므로 우리는 디도에게 이미 여러분 가운데 시작한 이 은혜로운 일을 성취하라고 권면했습니다.
8:7 여러분은 모든 일, 곧 믿음과 말씀과 지식과 모든 열심과 우리에 대한 사랑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로운 일에도 풍성하도록 하십시오.
배경 설명
고린도후서 7장은 기쁨으로 끝났습니다. 디도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고, 바울은 깨어졌던 신뢰가 다시 세워진 것을 기뻐하며 “나는 여러분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라고 말했습니다(믿어 준 마음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7:13-16). 그리고 8장에 들어서면서 바울은 화제를 바꿉니다. 관계가 회복되었으니 이제 미뤄 두었던 일을 함께 마무리하자는 것입니다. 그 일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헌금이었습니다.
이 헌금은 바울이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 온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과 처음 사역의 방향을 나눌 때, 그들이 바울에게 당부한 것은 하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 달라”는 것이었고, 바울은 그것이 자기도 “힘써 행해 오던 일”이라고 말합니다(갈라디아서 2:10). 그 무렵 예루살렘 교회는 형편이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방인 교회들을 돌며 이 일을 위한 헌금을 모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에서는 매주 첫날 각자 수입에 따라 조금씩 따로 모아 두라고 구체적으로 안내하기도 했습니다(고린도전서 16:1-3).
고린도 교회는 이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교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울은 조금 뒤에 “이미 1년 전부터 여러분이 원해서 행해 온 일”이라고 말합니다(8:10). 그런데 바울과 교회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이 일도 멈춰 버린 것 같습니다. 바울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겼으니, 바울이 모으는 헌금에 마음이 갈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이미 여러분 가운데 시작한 이 은혜로운 일”을 마무리하도록 부탁했다고 말합니다. 시작은 했지만 끝내지 못한 일이 고린도 교회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먼저 다른 교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들입니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북쪽 지방으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같은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바로 그 마케도니아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7:5). 그러니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멀리서 전해 들은 소문이 아니라 눈앞에서 지켜본 일입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들은 처음부터 고난 속에서 세워진 교회들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이 주신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1:6). 빌립보에서는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형편을 “극한 가난”이라고 부릅니다. 반면 고린도는 두 항구를 끼고 있는 큰 상업 도시였고, 마케도니아에 비하면 훨씬 풍족한 곳이었습니다. 가난한 교회의 이야기를 부유한 교회에게 들려주는 것이니, 듣는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단어가 눈에 띕니다. 그는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헌신을 칭찬하는 것으로 말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주셨는지를 먼저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나눔은 사람의 결심에서 시작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 안에서 흘러넘치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8장과 9장에는 “은혜”라는 단어가 거듭해서 나옵니다. 1절, 4절, 6절, 7절, 9절이 모두 같은 단어입니다. 우리말성경이 “은혜로운 일”이라고 옮긴 6절과 7절도 원어로는 그냥 “이 은혜”입니다.
7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말을 돌립니다. 고린도 교회는 믿음도, 말씀도, 지식도, 열심도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그들은 특히 말과 지식과 영적 은사를 자랑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를 더 보탭니다. 그 모든 것에 풍성한 것처럼 이 은혜에도 풍성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8절에서 바울은 이것이 명령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9절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의 뿌리를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신 분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전체의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은혜: 원어 카리스. 받을 자격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8장에서 바울은 이 단어를 헌금과 나눔을 가리키는 말로도 씁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것도 은혜라는 뜻입니다.
- 시련: 원어 도키메. 본래 “시험해 보아 증명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이 겪은 고난은 그들의 믿음이 진짜임을 드러내는 시험대였습니다.
- 극한 가난: 직역하면 “바닥까지 내려간 가난”입니다. 조금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더 내려갈 곳이 없는 형편을 말합니다.
- 넘치다: 원어 페리슈오. 그릇에 담긴 것이 가장자리를 넘어 흘러내리는 모습입니다. 2절의 기쁨도, 7절의 풍성함도 이 단어입니다.
- 넘치는 헌금: 여기서 “헌금”으로 옮긴 말은 하플로테스입니다. 본래 “단순함, 한마음”이라는 뜻으로, 계산하지 않고 순전한 마음으로 내어 주는 너그러움을 가리킵니다.
- 자진해서: 원어 아우타이레토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 간곡히 부탁하다: 원어 데오마이와 파라클레시스가 함께 쓰였습니다. 거의 매달리듯 청했다는 말입니다. 헌금을 내라고 부탁받은 것이 아니라, 내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 참여: 원어 코이노니아. 교제, 나눔, 함께 가짐을 뜻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말할 때 쓰는 바로 그 단어입니다.
- 섬김: 원어 디아코니아.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봉사입니다. 집사(디아코노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 풍성하다: 원어 페리슈오. 2절의 “넘치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넘침과 고린도 교인들이 누리는 풍성함이 한 단어로 이어집니다.
주목해볼 표현
- “마케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8:1)
-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헌신을 사람의 공로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부릅니다.
- 나누는 마음조차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 “수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기쁨이 넘쳤고” (8:2)
- 고난과 기쁨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있습니다. 그들의 기쁨은 형편이 좋아서 생긴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 기쁨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솟아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 “힘에 부치도록 자진해서 했습니다” (8:3)
-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할 수 있는 만큼을 넘어서 드렸고, 그것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했습니다.
- 바울은 그들의 헌금 액수를 한 번도 밝히지 않습니다. 바울이 주목한 것은 얼마를 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냈느냐였습니다.
-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8:4)
- 그들은 나눔을 짐이 아니라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이 가난한 그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으려 했을 때, 오히려 그들이 끼워 달라고 청했습니다.
- 섬김을 부담이 아니라 기회로 보는 눈이 열릴 때 나눔은 기쁨이 됩니다.
-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 (8:5)
- 이 본문의 중심입니다. 그들이 드린 것은 돈이 먼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에게 물질을 나누는 일은 그 드림의 자연스러운 열매가 됩니다.
- “이 은혜로운 일에도 풍성하도록 하십시오” (8:7)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가진 믿음, 말씀, 지식, 열심, 사랑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 목록에 하나를 더 보탭니다.
- 영적으로 풍성하다는 것은 아는 것이 많은 것만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흘려보낼 줄 아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 은혜로 시작하는 나눔 (8:1).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의 헌신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소개합니다. 나눔은 사람의 결심보다 먼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 고난과 가난 속에서 넘친 기쁨 (8:2).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수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 속에 있었지만, 그들의 기쁨은 넘쳤고 그 기쁨이 순전한 너그러움으로 흘러나왔습니다.
- 스스로, 힘에 부치도록 (8:3-4). 그들은 능력껏, 아니 능력 이상으로 드렸습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여하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들에게 섬김은 특권이었습니다.
- 먼저 자신을 드림 (8:5). 그들은 바울의 기대를 넘어섰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주께 드렸고, 그다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울의 사역에도 마음을 다했습니다.
-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라는 초대 (8:6-7).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1년 전에 시작한 일을 디도와 함께 마무리하도록 권합니다. 믿음과 말씀과 지식과 열심에 풍성한 것처럼 이 은혜에도 풍성하라고 초대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오늘은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입니다. 한 해 동안 받은 것을 헤아려 보며 감사하는 날에 이 본문을 읽게 된 것이 우연 같지 않습니다. 감사는 받은 것을 세어 보는 데서 시작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을 때 더 깊어집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이야기는 감사가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본문을 읽으며 가장 먼저 걸리는 것은 2절의 문장 구조입니다. 시련과 기쁨, 가난과 너그러움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순서가 반대여야 할 것 같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기뻐하고, 여유가 생기면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입니다. 그런데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형편이 나아지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바닥까지 내려간 가난 속에서 기쁨이 넘쳤고, 그 기쁨이 나눔으로 흘러넘쳤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나눌 수 있을 만큼 넉넉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사실 넉넉해지는 때는 잘 오지 않습니다. 수입이 늘면 필요도 함께 늘어납니다. 조금만 더 모이면, 이것만 해결되면, 그때 마음껏 나누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그때”는 자꾸 뒤로 밀립니다. 예수님은 성전 헌금함 앞에서 렙돈 동전 두 개를 넣은 가난한 과부를 보시고, 그 여인이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헌금을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12:43). 하나님은 남는 것에서 떼어 낸 것보다 가진 것 안에서 드린 마음을 더 크게 보십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모든 것을 내놓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바울도 조금 뒤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라고 말합니다(8:11). 다만 나눔의 문을 여는 열쇠가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마음에 남는 것은 4절입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바울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헌금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헌금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아마 바울은 그들의 형편을 알기에 이 일에 그들을 넣지 않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빠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이 일은 짐이 아니라 은혜에 참여하는 특권이었습니다. 우리는 섬김의 자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누가 부탁하면 마지못해 하는 일인지, 아니면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부담으로 여기는지 기회로 여기는지에 따라 마음의 온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4절에서 바울이 “참여”라고 쓴 단어가 코이노니아라는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우리가 흔히 성도의 교제라고 부르는 바로 그 말입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언어도, 문화도, 살아온 배경도 달랐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오래된 벽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가난을 자기 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니 육신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로마서 15:27). 나눔은 돈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가는 일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한 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교제였습니다. 우리의 나눔은 어디까지 닿고 있을까요? 내가 아는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서 멈추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본문의 중심인 5절 앞에 멈춰 섭니다.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이 자기 기대를 넘어섰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바울의 기대를 넘어선 것은 액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돈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드렸습니다. 여기에 나눔의 비밀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여전히 자기 것으로 쥐고 있으면서 물질만 떼어 내 드리려고 하면 나눔은 늘 아깝고 무겁습니다. 얼마를 드려야 할지 계산하게 되고, 드리고 나서도 마음이 쓰입니다. 그러나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에게는 질문이 바뀝니다. 내 것 가운데 얼마를 하나님께 드릴까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 가운데 얼마를 내가 맡아 쓰고 있는가를 묻게 됩니다.
이 순서는 우리 신앙 전체에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고, 재능을 드리고, 물질을 드립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보다 먼저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 자신입니다. 내가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먼저 있을 때, 나머지 드림은 억지로 짜내는 의무가 아니라 그 고백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열매가 됩니다. 순서가 뒤바뀌면 드림은 거래가 되기 쉽습니다. 이만큼 드렸으니 이만큼 돌려받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기쁨은 바로 이 순서에서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7절의 초대를 생각해 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믿음도, 말씀도, 지식도, 열심도 풍성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칭찬이지만, 동시에 부드러운 도전입니다. 아는 것이 많고 말을 잘하고 열심도 있는데, 정작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일에서는 멈춰 서 있지는 않은지 묻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신앙의 언어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은혜는 쌓아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 모든 이야기를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 기억합니다. 바로 다음 단락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신 분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8:9).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너그러움은 그리스도의 너그러움을 닮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먼저 그분의 가난하심으로 부요해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감사절에 우리가 헤아리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이 은혜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주님, 넉넉해질 때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 가진 것 안에서 기쁨으로 나누게 하소서. 섬김의 자리를 짐이 아니라 은혜로 보게 하시고, 무엇보다 먼저 제 자신을 주님께 드리게 하소서. 받은 은혜가 제 안에 고여 있지 않고 다른 이에게 흘러가게 하소서.
내 삶에 적용하기
- 받은 것을 헤아려 적어 보기. 추수감사절인 오늘,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께 받은 것을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적어 보십시오. 감사가 막연한 느낌으로 남지 않고 기억으로 자리 잡게 하는 연습입니다.
- “넉넉해지면”이라는 조건 내려놓기. 형편이 나아지면 하겠다고 미뤄 둔 나눔이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가진 것 안에서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작은 나눔 하나를 정해 실천해 보십시오.
- 섬김을 기회로 바라보기. 이번 주에 맡게 되는 봉사나 부탁이 있다면, “또 내가 해야 하나”가 아니라 “이 일에 함께할 수 있구나”라고 마음속으로 바꿔 말해 보십시오. 같은 일을 대하는 마음의 온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십시오.
- 나 자신을 먼저 드리는 기도. 무엇을 드릴지 고민하기 전에,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 오늘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먼저 고백해 보십시오. 그 고백 위에서 시간과 물질을 어떻게 쓸지 생각해 보십시오.
- 시작만 하고 멈춘 일 마무리하기. 고린도 교회처럼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멈춰 버린 선한 일이 있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을 하나 정해 보십시오.
생각해보기
- 나는 나눔을 “넉넉해진 뒤에 할 일”로 미뤄 두고 있지는 않은가?
-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쁨을 잃지 않았던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 기쁨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가?
- 내가 맡은 섬김의 자리를 나는 짐으로 느끼는가, 특권으로 느끼는가?
- 물질보다 먼저 나 자신을 주께 드린다는 것은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 믿음과 지식과 열심에 비해 내가 아직 풍성하지 못한 은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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