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가난해지셔서 우리가 부요해졌습니다 (고린도후서 8:8-11)

오늘의 말씀

[부요하신 이가 가난하게 되심] (우리말성경)
8:8 내가 명령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열성을 통해 여러분의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이려는 것입니다.
8:9 여러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잘 알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신 분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의 가난하심을 통해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10 이 일에 대해 내가 조언합니다. 이 일은 여러분에게 유익하며 이미 1년 전부터 여러분이 원해서 행해 온 일입니다.
8:11 그러므로 이제 마무리를 잘 하십시오. 여러분이 자원해 하는 것을 마무리하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십시오.

배경 설명

어제 본문에서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수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 속에서도 기쁨이 넘쳐 힘에 부치도록 헌금했고,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주께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먼저 자신을 주께 드린 사람들, 고린도후서 8:1-7).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믿음과 말씀과 지식과 열심에 풍성한 것처럼 이 은혜에도 풍성하라고 권했습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나면 듣는 쪽에서는 부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가난한 교회도 저만큼 했는데 너희는 왜 안 하느냐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그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내가 명령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사도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세운 사람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권위로 밀어붙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헌금을 명령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걷은 돈은 액수가 아무리 커도 은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바울은 두 가지를 꺼내 놓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열성입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모습은 고린도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비교가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사랑이 진짜인지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게 하는 거울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훨씬 더 깊은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9절은 고린도후서 전체에서, 아니 신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신 분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바울은 이 문장을 새로운 가르침처럼 꺼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이 복음을 들었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모르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는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떠올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헌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복음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나눔은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먼저 하신 일에 뿌리를 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유하셨다”는 것은 하늘의 영광을 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씁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함을 붙잡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고 말입니다(빌립보서 2:6-7).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 구유에서 태어나 머리 둘 곳 없이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것, 그것이 그분의 “가난하게 되심”입니다. 그리고 그 가난을 통해 우리가 부요해졌습니다. 죄 용서와 하나님의 자녀 됨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우리 힘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던 부요함입니다.

10절에서 바울은 다시 고린도 교회의 형편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이것을 “조언”이라고 부릅니다. 8절의 “명령”과 짝을 이루는 말입니다. 명령이 아니라 조언이고, 그 조언은 고린도 교인들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1년 전에 이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과의 관계가 흔들리면서 그 일도 멈춰 버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관계가 회복되었으니, 시작한 일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1절의 마지막 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십시오.”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처럼 힘에 부치도록 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가진 것 안에서 하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어지는 12절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 가진 대로 받으실 것이요, 가지지 않은 것까지 받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액수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끝까지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전체의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명령: 원어 에피타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지시, 따라야만 하는 명령을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에서도 “권면이지 명령은 아닙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고린도전서 7:6).
  • 열성: 원어 스푸데. 서두름, 부지런함, 간절함을 뜻합니다. 어떤 일에 마음이 쏠려 기꺼이 힘을 쏟는 모습입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 진실성: 원어 그네시오스. 본래 “친자식, 적자”라는 뜻으로, 가짜가 아니라 진짜임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된 아들”이라고 부를 때 이 단어를 썼습니다(디모데전서 1:2).
  • 증명하다: 원어 도키마조. 금속을 불에 넣어 순도를 시험해 보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험해 보아서 참된 것으로 드러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 은혜: 원어 카리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8장에서 바울은 이 단어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과 우리가 다른 이에게 나누는 일을 함께 가리킵니다.
  • 가난하게 되다: 원어 프토케우오. 그냥 조금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구걸해야 할 만큼 가진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번의 결정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로 쓰여,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일 전체를 떠올리게 합니다.
  • 부유하게 하다: 원어 플루테오. 넉넉하게 채워 준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난과 우리의 부요가 한 문장 안에서 맞바뀌는 모습입니다.
  • 조언: 원어 그노메. 판단, 의견을 뜻합니다. 명령과 대조되는 말로, 강요가 아니라 생각을 나누며 함께 결정하도록 초대하는 말입니다.
  • 유익하다: 원어 쉼페로. “함께 가져온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결국 도움이 되고 이롭다는 의미입니다.
  • 마무리하다: 원어 에피텔레오. 시작한 것을 끝까지 이루어 완성한다는 뜻입니다. 6절에서 디도에게 이 일을 “성취하라”고 할 때도 같은 단어가 쓰였습니다.
  • 자원하는 마음: 원어 프로뒤미아. 앞서 나가는 마음, 기꺼이 하려는 마음입니다. 등 떠밀려서가 아니라 먼저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목해볼 표현

  1. “내가 명령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8:8)
    • 바울은 사도의 권위로 헌금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나눔은 명령으로 짜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억지로 드리는 것보다 자원하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조금 뒤에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합니다(9:7).
  2. “여러분의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이려는 것입니다” (8:8)
    • 사랑은 말로 고백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이 진짜인지는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사랑이 참된 것으로 드러날 기회를 주려는 것입니다.
  3. “부유하신 분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8:9)
    • 이 본문의 중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사람이 되어 오신 일, 그리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내어 주신 일 전체를 한 문장에 담았습니다.
    • “여러분을 위해”라는 말이 이 가난의 이유입니다. 그분의 가난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의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4. “그분의 가난하심을 통해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9)
    • 그리스도의 가난과 우리의 부요가 서로 맞바뀝니다. 그분이 내려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 우리가 나누는 일은 이 큰 교환을 작게 닮아 가는 것입니다. 받은 부요함이 다시 다른 이의 부요함이 됩니다.
  5. “이미 1년 전부터 여러분이 원해서 행해 온 일입니다” (8:10)
    • 고린도 교인들은 행동뿐 아니라 원하는 마음에서도 다른 교회들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고 처음의 그 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처음 마음을 떠올리는 것이 다시 시작하는 힘이 됩니다.
  6.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십시오” (8:11)
    • 나눔의 기준은 남이 얼마를 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 하나님은 가지지 않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가진 것 안에서 마음을 끝까지 이어 가기를 바라십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1. 명령이 아닌 초대 (8:8). 바울은 헌금을 명령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열성을 거울삼아 그들의 사랑이 진짜임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초대합니다.
  2. 모든 나눔의 뿌리, 그리스도의 은혜 (8:9).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신 분이었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고, 그 가난을 통해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유는 먼저 이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3. 처음 마음을 기억하라 (8:10). 고린도 교인들은 1년 전에 누구보다 먼저 이 일을 원했고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그 처음 마음을 일깨우며 이것이 그들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조언합니다.
  4. 원하는 마음을 끝까지, 가진 것으로 (8:11). 시작한 일은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것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완성되는 것, 그것이 바울이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 본문을 천천히 읽어 보면, 바울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헌금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헌금은 계기였을 뿐, 그가 정말 붙들고 싶었던 것은 9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신 분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나눔에 대해 말하다가 바울은 결국 복음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갑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먼저 보여 줍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도 그 순서를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먼저 8절의 첫마디에 머물러 봅니다. “내가 명령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해야 할 것들의 목록이 늘어납니다.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들이 어느새 지켜야 할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의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무만 남고 마음이 빠져나가면, 우리의 드림은 무겁고 메마른 것이 되기 쉽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명령하는 대신 거울을 내밉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열성이라는 거울입니다.

그런데 이 거울은 비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견주기 시작하면 마음은 두 갈래로 흘러갑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안심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위축되거나 억울해집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바울이 말하는 증명은 남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사랑이 진짜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바울이 “진실성”이라고 쓴 단어는 본래 친자식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흉내가 아니라 핏줄처럼 진짜인 사랑, 말뿐이 아니라 삶으로 확인되는 사랑을 바울은 보고 싶어 합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도 조용히 묻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고백하는 사랑은 어디에서 확인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9절 앞에 멈춰 섭니다. 바울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 복음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야기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마음에 닿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성탄절마다 들은 이야기, 수없이 불러 본 찬송 속의 고백이 어느새 배경음처럼 흘러가 버립니다. 바울은 그 익숙한 진리를 다시 꺼내어 오늘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 내려놓습니다. 아는 것과 그것이 나를 움직이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유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셨다”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대개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유해지기를 원하고, 낮은 사람은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거꾸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붙잡지 않으시고, 사람이 되셨고, 종이 되셨고, 십자가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분이 내려놓으신 것은 남는 것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바울은 단 한마디로 말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여기서 우리는 나눔이 무엇인지 새롭게 보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나눔을 내 것에서 일부를 떼어 남에게 주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보여 주는 나눔의 모델은 그리스도의 내려오심입니다. 그분의 가난이 우리의 부요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 됨, 죄 용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자유는 모두 그분이 가난해지셨기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누는 것은 원래 내 것을 선심 쓰듯 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받은 부요함을 다른 이에게 흘려보내는 일입니다. 받은 것이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은 나눔 앞에서 계산이 줄어듭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모든 것을 다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11절의 마지막 말이 그것을 분명히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십시오.” 이 말씀은 두 가지 방향에서 우리를 붙듭니다. 하나는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지 않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남들만큼 하지 못한다고, 마케도니아 교인들처럼 힘에 부치도록 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진 대로 받으십니다. 다른 하나는 도전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말 뒤에 숨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무엇인가는 있습니다. 시간이든, 관심이든, 기도든, 작은 물질이든,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으로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0절과 11절이 함께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1년 전에 누구보다 먼저 이 일을 원했습니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실제로 시작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일들 속에서 그 일은 멈춰 버렸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떤 설교를 듣고, 어떤 말씀을 읽고, 마음이 뜨거워져 결심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겠다고, 무엇인가를 시작하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일들입니다.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결심에서 멈췄는지 돌아보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바울은 그런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의 처음 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미 1년 전부터 여러분이 원해서 행해 온 일입니다.” 이 말에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너희는 원래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멈춘 것을 탓하기보다, 처음 그 마음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은혜가 필요합니다. 멈춘 자리에서 자책만 하고 있으면 다시 시작할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 마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면, 그 마음을 다시 이어 갈 용기가 생깁니다.

원하는 마음과 행하는 일이 하나가 되는 것, 바울이 11절에서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음만 있고 행동이 없으면 그 마음은 결국 식어 버립니다. 행동만 있고 마음이 없으면 그 행동은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이 둘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것을 깊이 아는 사람은, 그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원하게 되고, 원하는 것을 끝까지 행하게 됩니다. 의무가 아니라 감사에서 흘러나오는 나눔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주님, 너무 익숙해서 무뎌진 복음을 다시 새롭게 보게 하소서. 부유하신 주님이 저를 위해 가난해지셨다는 사실이 오늘 제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하소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제가 가진 것 안에서 기쁨으로 나누게 하시고, 처음 주셨던 마음을 기억하여 멈춰 있던 선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게 하소서.

내 삶에 적용하기

  1. “잘 알고 있는” 복음을 다시 읽기. 오늘 빌립보서 2장 5-11절을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내려놓으신 것을 하나하나 짚어 보며, 그것이 “나를 위해”였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 보십시오.
  2. 받은 부요함 적어 보기. 그리스도의 가난하심을 통해 내가 받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적어 보십시오. 용서, 하나님의 자녀 됨, 소망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포함해서 적어 보면 나눔 앞에서 마음이 달라집니다.
  3. 비교의 잣대 내려놓기. 이번 주에 섬김이나 나눔을 할 때, 다른 사람이 얼마나 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 물어보십시오. 남과 견주는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11절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4. 멈춘 결심 하나 다시 꺼내기. 예전에 마음먹었다가 멈춰 버린 선한 일을 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그것을 처음 원했던 때를 기억하며, 이번 주 안에 마무리를 향한 작은 한 걸음을 정해 실천해 보십시오.
  5. 가진 것 목록 만들기. 물질만이 아니라 시간, 기술, 관심, 기도처럼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을 적어 보십시오.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는 데 써 보십시오.

생각해보기

  1. 나에게 신앙의 일들이 마음 없는 의무처럼 느껴지는 영역은 어디인가?
  2. 그리스도께서 “부유하신 분으로서 가난하게 되셨다”는 말씀이 오늘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은 무엇인가?
  3. 나는 나눔을 “내 것을 떼어 주는 일”로 생각하는가, “받은 것을 흘려보내는 일”로 생각하는가?
  4. 처음에 원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멈춰 있는 선한 일이 있는가? 그것을 다시 이어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5.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태그: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8장 #고후8장8-11절 #바울 #고린도교회 #마케도니아교회 #예루살렘연보 #그리스도의은혜 #부요하신이가가난하게되심 #가난하게되신그리스도 #성육신 #자기비움 #은혜 #나눔 #헌금 #자원하는마음 #사랑의진실성 #처음마음 #마무리 #가진대로 #너그러움 #말씀묵상 #묵상 #매일묵상 #큐티 #묵상가이드 #고린도후서묵상 #2Corinthians #Grace #Generosity #Incarnation #ChristBecamePoor

Similar Pos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