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려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7-12)
오늘의 말씀
[질그릇에 담긴 보배] (우리말성경)
7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는데 이는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우리는 사방으로 환난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9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않고 넘어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이는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항상 예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합니다.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의 첫 단어는 “이 보배”입니다.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려면 바로 앞 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6절에서 바울은 창세기의 첫 장면을 불러옵니다. 어둠 속에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도 빛을 비추셨고,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고 말했습니다. 보배는 바로 그 빛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일, 그리고 그 앎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도록 맡겨진 직분 전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보배를 어디에 담아 두었는지를 말하면서 뜻밖의 단어를 고릅니다. 질그릇입니다. 흙을 빚어 구운, 값싸고 흔한 그릇입니다. 고린도는 항구 도시였고 사람과 물건이 끊임없이 오가는 곳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부엌과 창고와 골목에는 흙으로 빚은 항아리와 등잔이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떨어뜨리면 깨지고, 금이 가면 버려지고, 다시 새것을 사면 그만인 물건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 단어를 들었을 때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흙으로 빚은 등잔을 떠올리면 앞 절과의 연결이 더 선명해집니다. 옛 사람들의 밤은 손바닥만 한 흙 등잔 하나로 밝혀졌습니다. 그릇은 볼품이 없었지만, 그 안에서 타는 불은 방 전체를 밝혔습니다. 사람들은 등잔을 보려고 불을 켜지 않았습니다. 불을 보려고 등잔을 들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려는 것도 그것입니다.
바울이 굳이 자기를 질그릇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고린도의 사정이 있습니다. 편지 곳곳에서 드러나듯,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을 초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편지는 무게가 있지만 직접 보면 약하고 말도 시원찮다는 평가였습니다(10:10). 그들 곁에는 더 그럴듯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고, 말솜씨가 좋고, 내세울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기준으로 보면 바울은 금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 평가를 반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정합니다. 맞다, 나는 흙 그릇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릇이 화려하면 사람들은 그릇을 칭찬합니다. 그릇이 초라하면 그 안에 든 것이 보입니다.
8절과 9절에서 바울은 네 쌍의 대구를 연달아 씁니다. 환난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 답답해도 낙심하지 않고,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않고, 넘어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들은 추상적인 표어가 아닙니다. 바울은 이 편지 1장에서 아시아에서 겪은 일을 털어놓으며 살 소망까지 끊어졌었다고 고백했습니다. 11장에 가면 매 맞고, 돌에 맞고, 파선하고, 굶주린 목록이 길게 이어집니다. 네 쌍의 대구는 그 모든 일을 지나온 사람이 내린 요약입니다.
이 대구에는 원어로 보아야 살아나는 말놀이가 있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는 구절은 원어로 아포루메노이, 우크 엑사포루메노이입니다. 길을 잃다라는 같은 뿌리에 앞말 하나를 더 붙였을 뿐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길이 막혀도 아주 막히지는 않는다, 쯤이 됩니다. 바울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날이 있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끝까지 가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10절부터는 이 경험에 이름이 붙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겪는 일을 예수의 죽으심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쓴 단어는 흔히 쓰는 죽음이라는 말이 아니라, 죽어 가는 과정이나 시들어 가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닳아 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닳아 감을 헛된 소모로 보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걸으신 길을 몸에 지고 다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이 무덤이 아니었던 것처럼, 자기 몸에도 예수의 생명이 드러나리라고 말합니다.
11절에서 넘겨진다는 동사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팔려 넘겨지실 때 쓰인 바로 그 말입니다. 바울은 자기 고난을 영웅담으로 쓰지 않고, 예수의 이야기 안에 자기 이야기를 끼워 넣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 바울은 조금 뜻밖의 결론을 냅니다. 죽음은 우리 안에서,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닳아 가는 동안 고린도 교인들은 살아났습니다. 이 문장에는 약간의 서운함이 섞여 있다고 읽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것을 바울의 사역 전체를 요약하는 문장으로 읽습니다. 그가 흙 그릇으로 깨지는 동안 그 틈으로 빛이 새어 나가 다른 사람을 살렸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전체의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단락은 자격이 아니라 자비로 (고린도후서 4:1-6)에서 다루었고, 바울이 살 소망까지 끊어졌던 날을 고백한 대목은 살 소망이 끊어진 자리에서 (고린도후서 1:8-11)에서 보았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보배: 원어 테사우로스. 창고에 쌓아 둔 귀한 것, 보물 상자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6절에서 말한 빛,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것과 그것을 전하는 직분을 가리킵니다.
- 질그릇: 원어 오스트라키논 스큐오스. 흙을 구워 만든 그릇입니다. 값싸고 흔하며 쉽게 깨지는 물건의 대명사였습니다. 창세기에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 능력의 지극히 큰 것: 원어 휘페르볼레 테스 뒤나메오스. 휘페르볼레는 기준을 한참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정도의 힘을 말합니다.
- 환난을 당하다: 원어 틀리보. 짓누르다, 압박하다는 뜻입니다. 포도를 짜거나 곡식을 누를 때 쓰는 말입니다.
- 절망하다: 원어 스테노코레오. 좁은 곳에 갇히다, 옴짝달싹 못 하다는 뜻입니다. 눌리기는 해도 숨 쉴 틈이 막히지는 않는다는 대구를 이룹니다.
- 답답하다 / 낙심하다: 원어 아포레오와 엑사포레오. 길을 잃다라는 같은 말에 앞말을 붙여 만든 말놀이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지만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 버림받다: 원어 엥카탈레이포. 홀로 내버려 두다는 뜻입니다. 시편 22편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부르짖음과 같은 뿌리의 말입니다.
- 넘어뜨림을 당하다: 원어 카타발로. 바닥에 내던져지다, 쓰러뜨려지다는 뜻입니다. 싸움이나 씨름에서 상대에게 넘어가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 예수의 죽으심: 원어 네크로시스. 한 번의 죽음보다 죽어 가는 과정, 서서히 시들어 가는 상태에 가까운 말입니다.
- 넘겨지다: 원어 파라디도미.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팔려 넘겨지실 때 쓰인 말입니다. 바울은 자기 고난을 예수의 이야기 안에서 이해합니다.
- 역사하다: 원어 에네르게오. 안에서 일하다, 힘을 내다는 뜻입니다. 에너지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주목해볼 표현
-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는데” (7절)
- 바울은 그릇과 내용물을 분명히 구분합니다. 귀한 것은 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든 것입니다.
- 흙 그릇이라는 말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사실 확인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 위에서 자유가 시작됩니다.
-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7절)
- 약함에는 목적이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누구의 힘인지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 이 편지의 끝에서 바울은 같은 진리를 다시 듣게 됩니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진다는 말씀입니다(12:9).
- “사방으로 환난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 (8절)
- 바울은 눌리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눌린다고 먼저 인정합니다. 그러고 나서 부서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 신앙은 압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압박 속에서도 숨 쉴 틈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않고” (9절)
- 사람에게 쫓길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 버려지지는 않는다는 고백입니다.
- 버림받다는 말은 십자가 위의 부르짖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버림을 예수께서 먼저 지나가셨기에, 바울은 버려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10절)
- 고난을 피하지 못한 흔적이 아니라 예수와 같은 길을 걷는 표시로 봅니다.
- 짊어지고 다닌다는 말은 매일의 일입니다. 특별한 순교의 날보다 평범하게 닳아 가는 날들을 가리킵니다.
- “죽음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합니다” (12절)
- 한 사람의 깨어짐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으로 흘러갑니다. 바울 사역의 요약이자, 십자가의 모양 그대로입니다.
- 그릇에 난 금은 흠이 아니라 빛이 새어 나가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 보배는 흙 그릇에 담겨 있다 (7절). 그리스도를 아는 빛은 뛰어난 사람에게만 맡겨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부러 흔하고 약한 그릇을 고르셨습니다. 그래야 그 빛이 그릇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 눌려도 부서지지 않는다 (8-9절). 바울은 고난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네 번이나 당했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그 고난이 마지막 말이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끝까지 가지 않게 붙드신 분이 계셨다는 고백입니다.
- 닳아 가는 삶에 예수의 생명이 드러난다 (10-11절). 바울은 자기 몸이 매일 조금씩 소모되는 것을 예수의 죽으심을 지고 다니는 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죽음 뒤에 부활이 있었던 것처럼, 그 닳아 감 속에서 예수의 생명이 보이게 된다고 말합니다.
- 한 사람의 깨어짐이 다른 사람을 살린다 (12절). 바울이 부서지는 동안 고린도 교인들은 살아났습니다. 복음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끌어올리는 방식보다, 깨어진 사람을 통해 빛이 새어 나가는 방식으로 전해집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이 본문 앞에 서면 먼저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입니다.
바울이 자기를 질그릇이라고 부를 때, 그 말에는 억지로 꾸민 겸손이 없습니다. 그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몸은 지쳤고, 말솜씨는 대단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를 초라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바울은 그 평가를 뒤집으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평가 한가운데에 하나님의 목적을 놓습니다.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 보이게 하려고.
우리는 대개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릇이 흙이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합니다. 금이 간 곳을 가리고, 이가 빠진 곳을 돌려놓고, 사람들이 보는 쪽으로는 가장 멀쩡한 면을 내놓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따라가 보면 대개 두려움이 있습니다. 약한 것이 드러나면 그 안에 든 것까지 가볍게 여겨질까 봐, 내가 믿는 것이 나 때문에 초라해 보일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그릇이 흙이라서 보배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금 그릇에 담긴 빛은 사람들이 그릇의 광택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흙 그릇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착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약하다는 사실은 복음을 가리는 흠이 아니라, 복음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표지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오래 머무는 자리는 8절과 9절의 네 쌍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바울이 앞말을 지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환난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이 없었다고, 쫓기지 않았다고, 쓰러지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네 번 모두 당했다고 먼저 씁니다. 그리고 그 뒤에 한 줄을 덧붙입니다. 그러나 끝은 아니었다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순서가 자주 뒤집힙니다. 뒷말만 말하고 앞말은 빼려고 합니다. 힘들지 않다고,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음이 있으니 괜찮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앞말을 정직하게 남겨 둡니다. 눌렸고, 길을 잃었고, 쫓겼고, 넘어졌습니다. 그 정직함이 있기 때문에 뒷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지금 눌려 있는 사람에게 괜찮은 척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눌린 것은 눌린 것이라고 말해도 된다고 허락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조용히 다른 사실 하나를 놓아 줍니다. 눌려 있지만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는 것, 길이 보이지 않지만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것 자체가 그 증거일 수 있습니다.
특히 버림받지 않는다는 구절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게 됩니다. 이 말은 시편 22편에서 다윗이 외쳤고,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그대로 외치신 부르짖음과 같은 뿌리의 말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그 버림의 자리를 예수께서 먼저 지나가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쫓기는 자리에서도 버려지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깊은 버림은 이미 다른 분이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10절입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쓴 단어는 한 번에 끝나는 죽음이 아니라 서서히 닳아 가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이 말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로 사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큰 사건 하나로 무너지는 일보다, 매일 조금씩 지쳐 가는 일이 더 흔합니다. 기운이 조금 줄고, 기대가 조금 줄고, 견딜 수 있는 날과 없는 날이 섞여 갑니다.
바울은 그 닳아 감을 의미 없는 소모로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걸으신 길을 지고 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무덤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닳아 가는 자기 몸에서 예수의 생명이 드러나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고난을 미화하는 말이 아닙니다. 고난 한가운데서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네 번째는 12절입니다. 죽음은 우리 안에서,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이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그럼 바울은 손해만 본 것인가. 그런데 바울의 어조에는 계산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 삶이 누군가를 살리는 자리에 쓰였다는 것을 담담히 적습니다. 흙 그릇에 금이 가면 그 틈으로 빛이 새어 나갑니다. 멀쩡한 그릇은 빛을 안에 가두지만, 깨어진 그릇은 빛을 밖으로 흘려보냅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장 약할 때 다른 사람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사람, 넘어졌던 경험 때문에 넘어진 사람 곁에 오래 앉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준 것은 강함이 아니었습니다. 깨어진 틈으로 새어 나온 빛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7절의 목적절로 돌아갑니다.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약한 사람에게만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도 쉼이 됩니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버텨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쉬지 못합니다. 그릇이 보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금이 갈 때마다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보배를 지키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릇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그 안에 든 빛이 조금 더 잘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오늘 이 말씀이 묻는 것은 하나입니다. 나는 흙 그릇인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금이 간 곳을 가리느라 지쳐 있는가, 아니면 그 틈으로도 빛이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가. 흙 그릇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내 삶에 적용하기
- 내 그릇의 금 간 곳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기. 요즘 가장 약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고치거나 감추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 그대로 말해 보십시오. 흙 그릇이라는 고백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 앞말을 지우지 않고 말하기. 누군가 안부를 물을 때 무조건 괜찮다고 하기보다,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는 눌려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말해 보십시오. 바울은 눌렸다는 말과 부서지지 않았다는 말을 함께 썼습니다.
- 아직 부서지지 않은 증거 찾아보기.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하나 떠올리고, 그때 무엇이 나를 끝까지 가지 않게 붙들었는지 적어 보십시오. 그 안에서 버려지지 않았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매일의 닳아 감에 이름 붙이기. 반복되는 수고와 피로가 헛되게만 느껴진다면, 그것을 예수께서 걸으신 길 위의 걸음으로 다시 보는 연습을 해 보십시오. 모든 지침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 때문에 닳아 가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 내 약함이 누군가에게 빛이 될 자리 찾기. 내가 넘어졌던 경험이 있다면, 지금 비슷한 자리에 있는 사람 곁에 조용히 있어 주십시오. 앞선 글 살 소망이 끊어진 자리에서 (고린도후서 1:8-11)에서 보았듯, 바울의 위로도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생각해보기
- 나는 요즘 내 그릇의 어느 부분을 가장 열심히 가리고 있는가? 그것이 드러나면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운가?
- 8-9절의 네 쌍 가운데 지금 내 상황과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인가? 그 뒷말은 나에게 어떻게 들리는가?
-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나를 끝까지 가지 않게 붙들어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 매일 조금씩 닳아 가는 내 삶을, 나는 소모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한 쓰임으로 보고 있는가?
- 나의 약함을 통해 누군가 위로를 받은 적이 있는가? 그때 흘러간 것은 나의 힘이었는가, 아니면 다른 분의 빛이었는가?
태그: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4장 #고후4장7-12절 #바울 #질그릇 #보배 #질그릇에담긴보배 #흙그릇 #약함 #하나님의능력 #능력은약한데서 #환난 #낙심하지않음 #버림받지않음 #넘어져도망하지않음 #예수의죽으심 #예수의생명 #십자가 #부활 #고난 #위로 #말씀묵상 #묵상 #매일묵상 #큐티 #묵상가이드 #성경묵상 #고린도후서묵상 #2Corinthians #JarsOfClay #TreasureInJarsOfClay #PressedButNotCrushed #StrengthInWeak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