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안에는 오직 예만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9-22)
오늘의 말씀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우리말성경)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통해서 여러분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가 “아니오”로 된 적이 없습니다. 그 안에는 오직 “예”만 있을 뿐입니다.
20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통해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21 여러분과 함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22 또한 그분은 우리를 인 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배경 설명
어제 본문은 짧은 한 문장으로 끝났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바울은 자기 여행 계획이 바뀐 일을 해명하다가 그 문장에 이르러 멈췄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방향이 놀랍게 바뀝니다. 일정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린도 사람들의 의심이 거기까지 번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겠다고 하고 안 온 사람, 그 사람이 전한 말씀이라면 그 말씀도 사람 따라 흔들리는 것 아니냐. 이런 의심 앞에서 바울은 자기를 더 변호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기가 전한 분을 가리킵니다. 내가 흔들렸느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우리가 함께 들었던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해 보라는 것입니다.
19절에 세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 이 이름들은 그냥 나열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 홀로 도착해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지내다가, 마케도니아에서 실라와 디모데가 내려온 뒤에 본격적으로 말씀 전하는 일에 매달렸다고 합니다(행 18:5). 실루아노는 실라의 다른 이름입니다. 곧 바울이 부르는 이 세 사람은 고린도교회를 처음 세운 개척팀입니다.
바울이 이 이름들을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고린도 사람들이 흔들고 있는 것은 바울 한 사람의 신뢰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 들은 복음은 한 사람의 입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여러 해에 걸쳐, 같은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 예수가 오늘은 이렇고 내일은 저런 분이셨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 바울이 자기 잘못은 혼자 지고 복음은 우리라고 함께 말했던 그 태도가 여기서 그대로 이어집니다.
20절에서 문장이 한 단계 더 넓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아니오가 없다는 말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는 말로 나아갑니다. 여기서 약속이란 구약 전체가 품고 있던 약속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복의 약속, 다윗에게 하신 영원한 나라의 약속, 예언자들이 전한 회복과 새 언약의 약속. 이스라엘은 그 약속들을 수백 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나라가 망했고 성전이 무너졌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약속이 취소된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아주 길었습니다. 바울은 그 긴 기다림의 답이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무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약속들에 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다음 문장은 예배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초대교회 예배에서 누군가 기도를 마치면 회중이 소리 내어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바울은 그 익숙한 장면을 끌어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라고 하셨고, 우리는 그 예에 아멘으로 대답합니다. 대화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21절과 22절은 문장 구조가 눈에 띕니다. 주어가 전부 하나님이십니다. 굳건하게 하시고, 기름을 부어 주시고, 인 치시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네 가지 동사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굳건해지려고 애쓴다는 말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짧은 두 절 안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이 함께 등장합니다. 신약에서 삼위 하나님이 한 호흡에 나오는 이른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 가지 더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19절에서 바울은 그냥 예수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이 편지에서 이 온전한 호칭이 나오는 것은 여기 한 번뿐입니다. 지금 다투는 문제가 작아 보여도 그 아래에 걸린 것이 무엇인지를 이 호칭이 알려 줍니다. 일정표를 두고 시작된 말이었지만, 바울이 지키려는 것은 자기 체면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고백해 온 분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 단락의 분위기는 앞부분과 다릅니다. 1장 12절부터 18절까지가 해명이었다면, 19절부터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변호하던 사람이 어느새 찬양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입니다. 자기를 설명하다가 하나님을 말하기 시작하면 문장의 온도가 달라집니다.
편지 전체의 흐름은 고린도후서 개론에, 어제 본문의 이야기는 계획이 바뀌어도 신실함은 남는다 (고린도후서 1:15-18)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쉽게 풀어보는 주요 단어
- 실루아노: 사도행전에서 실라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으로 보낸 지도자였고(행 15:22), 2차 전도여행에서 바울과 함께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동료입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의 발신인에도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잘 아는 이름이었기에 바울이 증인처럼 불러낸 것입니다.
- 전파된: 원어 케뤼소는 왕의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 광장에서 외친다는 말입니다. 전령은 자기 의견을 보태지 않습니다. 받은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 바울이 자기 말이 아니라 맡은 말을 전했다는 뜻이 이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 예: 원어 나이는 그렇다, 확실하다는 대답입니다. 바울은 이 짧은 단어를 이 단락에서 반복해 씁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에게 던진 비난의 단어를 가져다가, 그 단어로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 약속: 원어 에팡겔리아는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스스로 지키시는 약속을 가리킵니다. 사람끼리 주고받는 거래와 다릅니다. 조건을 걸고 서로 맞추는 계약이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기로 하신 선언입니다.
- 아멘: 히브리어에서 온 말로, 든든하다, 확실하다는 뜻의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옳습니다, 그대로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화답입니다. 흥미롭게도 신실하다는 뜻의 히브리어와 뿌리가 같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사람이 같은 말로 대답하는 셈입니다.
- 굳건하게 하시고: 원어 베바이오오는 법률 문서에서 계약의 효력을 보증한다고 할 때 쓰던 말입니다.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준다는 뜻입니다. 내가 이를 악물고 버틴다는 말이 아니라, 붙들어 주시는 분이 계셔서 서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 기름을 부어 주신: 원어 크리오.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칭호도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뜻의 같은 어근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몇몇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씁니다.
- 인 치시고: 원어 스프라기조. 옛날에 물건을 보낼 때 밀랍에 도장을 눌러 봉했습니다. 그 도장은 두 가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중간에 손대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을 치셨다는 말은 우리가 누구의 소유인지가 표시되었다는 뜻입니다.
- 보증: 원어 아라본은 상거래에서 쓰던 계약금입니다. 전체 값의 일부를 먼저 치러서 나머지를 반드시 치르겠다고 약속하는 돈입니다. 지금도 그리스어에서 이 단어는 약혼반지를 가리킵니다. 결혼 전체를 담보하는 작은 표시라는 뜻입니다.
주목해볼 표현
-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통해서” (19절)
- 바울은 자기 이름 옆에 두 사람의 이름을 세웠습니다. 지금 의심받는 사람이 자기 혼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복음은 혼자 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 이것이 은근한 변호가 됩니다. 한 사람의 성품은 의심할 수 있어도 세 사람이 여러 해 동안 같은 말을 전한 사실은 의심하기 어렵습니다. 믿음이 공동체 안에서 전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그 안에는 오직 예만 있을 뿐입니다” (19절)
- 어제 본문의 비난을 뒤집는 문장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예와 아니오를 동시에 쥐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대답합니다. 내가 전한 그분에게는 아니오가 없다고.
- 예수님의 삶 전체가 이 문장의 근거입니다. 그분은 오라고 하신 자리에 오셨고, 하시겠다고 한 일을 하셨고, 십자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대답도 사람을 향한 그분의 대답도 예였습니다.
-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됩니다” (20절)
- 얼마든지라는 말에 주목할 만합니다. 몇 개는 이루어지고 몇 개는 보류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약속이 아무리 많아도 전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는 말입니다.
-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여러 약속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약속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길을 잃을 때 여기로 돌아오면 됩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예가 되는가.
- “우리는 그를 통해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20절)
- 우리의 아멘은 출발점이 아니라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예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아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아멘은 마음속으로만 하는 말이 아니라 소리 내어 하는 말이었습니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함께 대답하는 말입니다. 믿음은 혼자 삼키는 확신이 아니라 밖으로 나오는 대답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 “굳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21절)
- 여기서 바울은 여러분과 함께 우리라고 씁니다. 지금 서로 의심하고 있는 두 편을 한 문장 안에 묶어 놓은 것입니다. 너희를 세우신 분과 나를 세우신 분이 같은 분이시다.
- 관계가 틀어졌을 때 회복이 시작되는 자리가 대개 여기입니다. 누가 옳은지를 먼저 가리는 대신, 우리를 함께 붙들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를 먼저 보는 것입니다.
- “보증으로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22절)
- 계약금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합니다. 아직 다 받지 않았다는 것과, 반드시 다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이 표현은 정직합니다. 우리가 지금 다 누리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헛된 기다림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나머지 전부에 대한 하나님의 서명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요 내용
- 바울은 자기 변호를 그리스도께로 넘겼다 (19절). 나를 믿어 달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함께 들은 그분을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증언에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함께 세웁니다. 복음의 신뢰는 한 사람의 평판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 그리스도 안에는 아니오가 없다 (19절). 사람의 말에는 뒤집힘이 있지만 그분에게는 없습니다. 어제 본문이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고백이었다면, 오늘 본문은 그 신실하심이 어디서 눈으로 확인되는지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 (20절). 오래 기다린 약속들, 취소된 것처럼 보였던 약속들이 그분 안에서 전부 성취됩니다. 기다림이 길었다고 해서 약속이 무효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의 예에 대한 응답이다 (20절). 믿음은 우리가 먼저 짜내는 확신이 아니라 먼저 오신 분께 드리는 대답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 우리를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21-22절). 굳건하게 하시고, 기름 부으시고, 인 치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네 동사 모두 주어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붙들려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잘 붙들고 있다는 사실보다 먼저입니다.
계획은 힘을 잃어도, 부르심은 예다
이 본문 앞에 앉았을 때 먼저 걸린 것은 하나님 쪽의 말이 아니라 제 쪽의 말이었습니다. 제 지혜로 세운 것들은 예가 아니오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습니다. 그럴듯해 보이던 판단이 몇 달 뒤에 허술해지고, 확신을 가지고 그었던 선이 다시 보면 흐려져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내 판단의 정확도가 올라간다는 것이 아니라 내 판단이 얼마나 자주 뒤집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섰을 때 제가 세워 두었던 계획은 힘을 잃었습니다. 일정도, 순서도, 언제쯤 무엇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림도 그대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간에는 마음이 한 방향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계획이 무너졌으니 부르심도 착각이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 본문은 그 둘을 나눠 놓습니다. 제 계획이 힘을 잃은 것과 그분의 부르심이 취소된 것은 다른 일입니다. 바울도 일정이 바뀐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붙든 것은 자기 일정표의 정확성이 아니라, 자기가 전한 분에게는 아니오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 지혜는 아니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참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 위에 놓인 부르심은 여전히 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집니다. 힘을 잃은 계획을 붙들고 앉아 그것이 왜 무너졌는지 되짚는 일이 아니라, 주께서 열어 주시는 문이 무엇인지 살피는 일입니다. 쫄지 않는 것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두려움은 문을 좁게 봅니다. 하나님이 여실 만한 문이 이것 하나뿐이라고 미리 정해 놓고, 그 문이 안 열리면 끝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얼마든지라고 말합니다. 약속이 아무리 많아도 전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은 문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살피는 일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열어 주시는 문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일을 맡기실 때, 그것을 감당할 능력 또한 주십시오. 두 번째 기도가 염치없는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21절과 22절이 말해 줍니다. 굳건하게 하시고, 기름 부으시고, 인 치시고, 성령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문을 여시는 분과 그 문을 통과할 힘을 주시는 분이 다른 분이 아닙니다.
제 계획은 여러 번 아니오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래에 한 번도 뒤집힌 적 없는 예가 있습니다. 그 예 위에 서서 오늘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짧은 대답이 아멘입니다.
내 삶에 적용하기
- 계획과 부르심을 한 번 나눠 적어 보기.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종이에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세운 계획인지, 하나님이 하신 부르심인지 옆에 표시해 보십시오. 계획이 무너졌다고 부르심까지 접을 필요는 없습니다.
- 무너진 계획을 되짚는 시간을 오늘은 줄이기. 왜 안 되었는지를 계속 복기하는 일은 어느 지점을 지나면 분별이 아니라 자책이 됩니다. 오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 열려 있는 문 하나를 살펴보십시오.
- 두려움이 좁혀 놓은 선택지를 다시 세어 보기. 이 길 아니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정말 하나뿐인지 적어 보십시오. 얼마든지라는 말은 하나님 쪽의 문이 우리가 세어 본 것보다 많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 감당할 힘까지 함께 구하기. 일을 맡겨 달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그 일을 감당할 능력도 함께 구하십시오. 인 치시고 보증을 주신 분께 드리는 기도이니 염치없는 기도가 아닙니다.
- 나를 붙들고 계신 네 가지를 세어 보기. 굳건하게 하심, 기름 부으심, 인 치심, 성령을 주심. 네 동사의 주어가 전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천천히 확인해 보십시오. 살 소망이 끊어진 자리에서 (고린도후서 1:8-11)에서 보았듯, 우리가 기댈 곳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생각해보기
- 최근에 힘을 잃은 나의 계획은 무엇인가? 그 계획이 무너진 것과 하나님의 부르심이 취소된 것을 나는 구분하고 있는가?
- 내 지혜로 세운 것 가운데 이미 아니오가 된 것을 떠올려 본다면 무엇인가?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 두려움 때문에 미리 닫아 놓은 문이 있다면 어디인가?
- 지금 내가 살펴야 할 문은 무엇인가? 그것을 살피기 위해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 일을 맡겨 달라는 기도와 감당할 힘을 달라는 기도 가운데, 나는 어느 쪽을 덜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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