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개론 —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몇 달 만에 다시 쓴 편지 — 흔들린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하여
몇 달 만에 다시 쓴 편지
편지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펜을 드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낸 지 몇 달 만에, 같은 도시 고린도에서, 같은 교회에게 또 한 통의 편지를 씁니다. 주후 51년경의 일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랬을까요? 좋은 소식이 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편지가 도착한 뒤에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서론에서 우리는 이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보았습니다. 마게도냐의 부름, 야손의 집 습격, 밤중의 탈출, 디모데를 통해 들려온 반가운 소식. 데살로니가후서는 그 이야기의 바로 다음 장입니다.
세 사람의 이름으로
편지의 첫 문장은 전서와 똑같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살후 1:1).
실루아노(실라)와 디모데. 데살로니가에서 함께 복음을 전하고, 함께 쫓겨나고, 함께 그 교회를 걱정한 세 사람입니다. 이 편지는 한 사람의 훈계가 아니라 함께 사역한 팀 전체의 마음입니다. 두 편지가 같은 시기, 같은 팀에서 나왔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였나 — 세 가지
디모데가 전서를 전하고 돌아왔을 때, 그가 가져온 소식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핍박이 더 거세졌습니다. 바울은 이 교회를 다른 교회들에 자랑합니다. “너희의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살후 1:4). 자랑스럽다는 말 뒤에는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 있습니다. 전서에서 “환난 중에도 믿음에 섰다”고 했던 그 환난이 끝나기는커녕 더 무거워진 것입니다.
둘째, 잘못된 가르침이 퍼졌습니다. 누군가 “주의 날이 이미 이르렀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 (살후 2:2)
주의 날이 이미 왔다면, 우리는 왜 아직 여기 있는가? 이 핍박은 그럼 무엇인가? 우리는 버림받은 것인가? 성도들의 마음이 뿌리째 흔들렸습니다.
셋째, 일을 놓아버린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세상이 곧 끝난다고 믿으니 직장에 나갈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일을 그만두고 형제들에게 얹혀 살면서, 남의 일에 참견하며 다녔습니다(살후 3:11).
가짜 편지, 그리고 친필 서명
두 번째 문제에는 섬뜩한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바울이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살후 2:2)라고 쓴 부분입니다.
누군가 바울의 이름을 도용한 편지를 만들어 돌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의 권위를 빌려 거짓 가르침을 퍼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편지 마지막에 이렇게 씁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나의 필적은 이러하니라” (살후 3:17)
대필자가 받아 적은 편지의 마지막 몇 줄을, 바울이 직접 펜을 받아 자기 손글씨로 씁니다. “이 삐뚤빼뚤한 글씨가 내 것이다. 앞으로는 이걸 보고 진짜인지 확인하라.” 위조를 막기 위한 서명이었습니다.
전서가 남긴 오해, 후서가 바로잡은 것
흥미로운 것은 이 오해가 바울 자신의 편지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아는 까닭이라”(살전 5:2). 예고 없이 갑자기 온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이미 몰래 와 버렸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후서에서 바울은 순서를 알려줍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왔다”는 말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서는 “준비하라, 갑자기 온다”, 후서는 “속지 말라, 아직이다” — 얼핏 반대처럼 보이지만 두 편지는 같은 것을 겨냥합니다. 오늘을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불법의 사람과 막는 자
2장 3-12절은 신약에서 해석하기 가장 어려운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 그리고 지금 그를 막는 자가 등장합니다.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살후 2:6-7)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너희는 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작은 참고 — “막는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로마 제국의 질서, 성령, 복음 전파의 사명, 하나님의 섭리 자체 등 여러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 성경이 밝히지 않은 부분이니 어느 하나로 단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이 대목에서 성도들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안심시키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악은 이미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고, 그 끝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8).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3장에서 바울은 아주 실제적인 문제로 내려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살후 3:10)
이 구절은 종종 가난한 사람을 향한 냉정한 말처럼 인용되지만, 문맥은 정반대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된 사람들은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도 게을러서가 아니라 잘못된 종말론 때문에 일을 놓아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삶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살후 3:8). 사도인 자신도 천막을 만들며 살았습니다.
종말을 믿는 것은 오늘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맡겨진 자리를 더 성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후서가 종말론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이 편지의 심장 —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이 짧은 편지 전체를 한 문장으로 모으면 이렇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살후 3:13)
핍박은 계속되고, 거짓 가르침은 퍼지고, 주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 한가운데서 바울은 화려한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낙심하지 말고 계속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축복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2:16-17)
이 묵상을 시작하며
데살로니가후서는 3장, 다섯 번의 묵상으로 끝나는 짧은 편지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질문이 다 들어 있습니다.
- 나는 무엇에 마음이 흔들리는가? 확인되지 않은 말, 그럴듯한 주장, 누군가의 단정적인 예언에?
- 내가 붙들고 있는 소망은 오늘을 성실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오늘을 놓아버리게 만드는가?
- 선을 행하다가 낙심한 자리가 내게 있는가? 결과가 보이지 않아 그만두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 나는 무엇이 진짜인지 어떻게 분별하는가? 바울이 친필 서명을 남긴 것처럼, 내게도 확인하는 기준이 있는가?
다음 주 다섯 날 동안, 흔들리는 교회에게 “굳건하게 서라”고 말한 이 편지를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태그: #데살로니가후서 #데살로니가후서개론 #살후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 #2차전도여행 #주의날 #재림 #종말론 #불법의사람 #막는자 #친필서명 #위조편지 #일하기싫어하거든먹지도말게하라 #선을행하다가낙심하지말라 #살후2장2절 #살후3장10절 #살후3장13절 #청년묵상 #말씀묵상 #2Thessalonians #Paul #DayOfTheLord #Eschatology #ManOfLawlessness #DoNotGrowWe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