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묵상집 다운로드_로마서 묵상집(1) 개론
로마서 묵상집 (1) 개론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아직 가 보지 못한 도시, 아직 만나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 바울이 쏟아부은 복음의 심장
편지 한 통이 세상을 바꾸다
한 사람이 낯선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는 그 도시에 가 본 적도 없고, 그곳 성도들 대부분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아는 복음의 전부를 이 한 통의 편지에 쏟아붓습니다.
그렇게 쓰인 편지가 바로 로마서입니다. 훗날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하고,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웨슬리의 마음이 “뜨거워진” 그 자리에는 늘 로마서가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복음의 논리를 가장 깊고 질서 있게 펼쳐 놓은 문서, 그래서 교회 역사가 위기를 만날 때마다 다시 돌아가 읽은 문서 — 그것이 로마서입니다.
이 묵상집을 여는 첫 개론에서는 먼저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이 편지를 썼는지, 그 배경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 편지를 통해 정말로 전하고 싶었던 한 가지 핵심에 귀를 기울이려 합니다. (로마서의 내용을 장별로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8월의 두 번째 개론에서 이어 가겠습니다.)
누가 썼는가 — 사도 바울
편지의 첫 문장이 곧 저자의 서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로마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다만 바울이 직접 펜을 들지는 않았습니다. 편지 끝머리에 흥미로운 인사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롬 16:22). 바울은 곁에 있는 더디오라는 대필자에게 편지를 불러 주었고, 그것을 받아 적게 한 것입니다. 위대한 편지의 문장들은 한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와, 또 다른 형제의 손끝을 거쳐 세상에 남겨졌습니다.
언제, 어디서 썼는가 — 고린도, 주후 57년경
로마서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막바지, 대략 주후 57년경 고린도(정확히는 고린도 인근 지역)에 머무는 동안 쓰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시기를 이렇게 짧게 기록합니다.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행 20:2-3). 바로 그 석 달의 어느 날, 로마서가 태어난 것입니다.
이 배경을 조금 더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동안 에베소에서 오랜 시간을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그의 마음을 크게 짓누른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고린도교회였습니다. 분쟁, 도덕적 문제, 지도자를 향한 오해까지 — 고린도교회는 바울에게 눈물의 편지를 쓰게 하고, 아픈 방문까지 감수하게 만든 “문제 많은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그 교회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편지로, 사람을 보내어, 마침내는 직접 찾아가 그 교회의 상처를 싸매고 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렇게 고린도의 문제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 바울은 바로 그 고린도에서 석 달 동안 머뭅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찾아온 잠깐의 안식 — 그 고요한 시간에 바울은 다음 사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이 향한 곳이 바로 로마였습니다.
왜 썼는가 — 아직 가 보지 못한 로마를 향하여
바울은 로마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그곳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롬 1:13)이라고 그는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 편지를 썼을까요? 몇 겹의 이유가 겹쳐 있습니다.
첫째, 로마를 발판 삼아 더 먼 곳으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의 시선은 로마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로마를 지나 스페인(서바나)까지 복음을 들고 가려는 큰 그림을 품고 있었습니다(롬 15:24, 28). 그에게 로마교회는 서쪽 선교를 위한 든든한 동역의 기지가 되어 줄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만나지 못한 이 교회에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미리, 그리고 온전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둘째,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오해 없이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에 대해서는 온갖 소문이 따라다녔습니다. “율법을 무너뜨리는 사람”이라는 오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복음 그 자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펼쳐 보입니다. 로마서가 다른 편지들보다 유난히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교회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한 편지라기보다, 복음의 전모를 정리해 건네는 복음 설명서에 가깝습니다.
셋째, 로마의 성도들을 격려하고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로마교회에는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가 함께 있었고, 그 사이에는 긴장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 10:12)는 복음의 진실로 그들을 한 몸으로 묶으려 했습니다.
다음 사역지로 먼저 파송한 동역자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두 사람이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이들은 원래 로마에 살던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는데, 로마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고, 고린도에서 바울을 처음 만났습니다(행 18:2). 같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하던 이 부부는 바울의 가장 가까운 동역자가 되었고, 이후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건너가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 갔습니다. 아볼로 같은 사람을 바른 길로 세워 준 것도 이 부부였습니다(행 18:24-26).
그런데 바울이 로마서를 쓸 무렵, 이 부부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귀환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 이것은 철저히 의도된 파송이었습니다. 다음 사역지를 로마로 정한 바울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동역자 부부를 먼저 그곳으로 보냈습니다.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길을 닦아 두는 선발대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했습니다. 로마에서 이들은 다시 자기 집을 열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바울은 편지 마지막에 이렇게 문안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롬 16:3-5). 훗날 바울이 실제로 로마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를 아는 신뢰하는 동역자들이, 이미 모여 예배하는 성도들의 공동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가 로마에서 사역의 기초를 닦아 놓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바울에게 이 부부는 로마와 자신을 잇는 살아 있는 다리였고, 다음 사명을 위해 먼저 보낸 선발 동역자였습니다.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도시, 얼굴도 모르는 성도들 — 그러나 그곳에는 목숨까지 함께 걸었던 이들이 먼저 자리 잡아 복음의 터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작은 참고 — 브리스길라·아굴라가 로마교회를 가장 먼저 세운 최초의 개척자였는지는 성경이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오순절에 로마에서 온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 돌아가 시작되었으리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행 2:10). 그러나 그들이 로마에서 자기 집을 처소로 교회를 개척했고(롬 16:5), 바울이 그곳에 이르렀을 때 사역의 기초가 이미 닦여 있었다는 것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바울이 전하려 한 핵심 —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그렇다면 바울이 이 편지에 담아 전하려 한 핵심은 무엇이었을까요? 로마서 전체를 여는 열쇠가 되는 두 절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이 두 절 안에 로마서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하려 한 것을 세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복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로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제국의 심장이었습니다. 그 화려한 도시 한복판에서,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유대인 목수를 전합니다.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이 복음이, 실은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그는 담대히 선언합니다.
둘째, 이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냅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로마서가 처음 몇 장에 걸쳐 아프게 파고드는 진실이 바로 이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그러나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 하나님은 당신의 의를 선물로 내놓으십니다. 우리가 쌓아 올리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없이 입혀 주시는 의입니다.
셋째, 그 의는 오직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 서는 길은 오직 하나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복음 앞에서는 아무도 자랑할 수 없고, 동시에 아무도 배제되지 않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나아가 스페인 끝까지 이 복음을 들고 가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복음은 특정 민족의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까지 흘러가야 할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묵상을 시작하며
로마서는 신학책이 아닙니다. 아직 만나 보지 못한 성도들을 향한 한 사도의 뜨거운 마음이 담긴 편지입니다. 고린도의 소란이 겨우 가라앉은 자리에서, 다음 사명을 바라보며, 자신이 붙든 복음의 전부를 쏟아부은 고백입니다.
이 묵상집을 통해 우리는 그 편지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게 될 것입니다.
- 나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세상 한복판에서, 사람들 앞에서.
- 나는 여전히 나의 의를 쌓아 하나님 앞에 서려 하지는 않는가?
- 나에게 복음은 정보인가, 아니면 나를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인가?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고백했을 때, 그것은 단지 용기 있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 전체가 그 고백의 증거였습니다. 이 묵상을 함께 걸어가며, 우리도 그 복음의 능력을 우리 삶에서 새롭게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